[학부모] 학부모교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가 역차별 당하는 모습이지요. 학급 당 인원도 25명 내외인 학교가 대부분이고, EBS와 강남 인강 등으로 인기 강사 강의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고, 지자체의 배려로 진학지도와 학습지도를 체계적으로 병행하는 학교도 많고요.

지금 도시와 농촌간 교육의 질과 양, 환경에서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지방 학생들은 대학진학이든 고등학교 진학으로 서울에 입성하는 것을 성공으로, 도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40년전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두어시간만 가면 서울인데, 서울 가서 친구사귀고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희망인 애들이 많습니다.

입학 정원이 3000~4000명인 상위권 대학들이 학교마다 120~160명 씩 선발한다. 합격선이 일반 모집보다 많게는 30점 이상 낮기도 하고, 일부 학과는 미달되기도하므로 대단한 특혜이다. 대학도 정부 정책에 호응하여 농어촌이나 지방 학교 출신자에게 유리한 전형을 내놓고 있는데, 서울대 지역균형전형, 연세대 진리자유전형, 고려대 지역인재 전형 등이 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지방학생들을 우대하는데도, 지방 고교에서 서울 고교로 전입하는 학생들이 꽤 된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몇 해 전 필자가 2학년을 담임했을 때 지방에서 전입한 B. 경북 어떤 읍 단위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1등만 하였고, 반장은 물론이고, 학생회장까지 도맡아했다고 하였다. 학교생활기록부에는 도지사, 군수, 학교장 표창 등이 화려하게 적혀 있었다. 2학년에 올라갈 즈음 누나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자, B군은 부모님께 자기도 서울로 보내달라고 졸랐단다. 큰물에서 한판 겨뤄보고 싶으니 강남 한복판에 있는 고등학교를 전학 보내 달라고… 학교에서는 반대를 하였지만,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을 하셨단다.

그렇게 B군은 누나와 이삿짐을 싸들고 강남에 입성하였다. 전입하여 곧바로 본 3월 모의고사에서 수리영역만 2등급이 나오고 나머지 과목은 모두 1등급이 나왔다. 그런대로 선방하였다. 4월말이 되어 중간고사를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언어 1등급, 수학 4등급, 영어 3등급, 과학 등 나머지 몇몇 과목 3~4등급, 주요과목 평균으로 계산한 학급 석차가 8등이었다. 그 동안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성적표를 받았다.

B를 불러, “시험 기간 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냐?”라고 물었다.

“아닙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제가 잘못 짚은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방 학교에서는 교과서에서 학생들이 풀기 좋은 문제만 골라서 출제하는데, 서울 학교는 교과서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만 골라서 출제하네요! 물론 쉬운 문제도 몇 개 있었지만…그것도 몇 개 놓쳤으니…전체적으로 제가 잘못 대응한 것 같습니다. 제 잘 못을 인정합니다!”

“기출 문제를 풀어보지 않았냐? 이곳저곳에서 굴러다니던데…”

“서울 애들은 그런 것도 풀어보나요? 저는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설명한 것만 복습하고 교과서 문제만 풀어보았는데…하여튼 10등 안에는 들었으니 다행이죠. 부모님도 좀 놀라긴 하셨지만 서두르지 말래요. 강남에서 공부 좀 하는 애들은 보통 애들과 다르더라고요. 제 자신이 많이 달라지겠습니다. 기말고사에서 선생님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의외로 담담하고, 자신감이 있었다. 시험 못 본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고, 점수나 석차에 연연하지도 않으며, 결과를 있는 그대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같은 또래 강남 아이들 보다 정서적으로 성숙해 있었고, 긍정적 마인드가 돋보였다.

2학기에는 소탈한 성격과 정직한 인간관계로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어려운 일이든 쉬운 일이든 항상 앞장서는 성품이었다. 주번도 아닌데도 한 겨울철에 지저분한 쓰레기통을 세제로 깨끗하게 닦아 엎어놓고 하교하기도 하였다. 친구가 청소 당번이면 청소도 같이 해주면서 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당연히 2학기에는 학급 부회장에 당선되었다.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가끔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지만, 이에 마음 쓰지 않았다. 3학년이 되어 학급회장으로 선출되면서, 학생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성적도 줄곧 3~4등을 하였고, 수시 모집에서 좀 떨어지는 내신 성적을 논술 시험으로 만회하여 최상위권 대학 최상위권 학과에 합격하였다.

대학에 합격하고 교무실에 필자를 찾아왔다.

자신이 다니던 지방 학교에서 서울대에 두 명이나 합격하였다고 했다. 그 동네에서 그냥 눌러 앉아 있었으면 서울대 갔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에 올라와 2년 동안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학급 회장도 해보았으며, 좋은 선생님도 만나서 좋았다고 하였다. 무엇보다도 어렸을 때부터 두려워했던 서울 환경에 적응한 것이 인생에서 큰 소득이었다고 하면서,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과 담임선생님께 고맙다고 하였다. 경상도 사투리가 채가시지 않은 B군에게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교단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제자가 바로 너다! 너를 보면 긍정의 힘이 느껴진다. 넌 누구보다도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 무엇을 해도 남보다 앞설 것이고, 성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구나!” 사실 교단에서 B군과 같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제자는 만나기 힘들다. 교무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저 애 부모는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학생. 자신의 단점과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목표를 세워 도전하고,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시인하고, 남을 위해 희생까지는 못한다해도 책임은 다하고, 항상 밝은 표정으로 여유를 가지고 생활하는 학생! 그 학생의 학교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담임교사의 멘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