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 중간 고사 성적표가 나오면 집집마다 고민이 많아집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만족스런 성적표를 받아내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올 100점 받으면 좀 만족스러울런지...
우리 동생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카! 고2인데, 지난 겨울 방학 때 엄청나게 공부를 했다더군요.
매일 집과 학교, 학원만 돌았으며, 한번도 딴데로 샌적이 없이 공부만 했답니다.
성적을 올리면 베이스 기타 동아리에 들어가도 좋다는 조건 때문이었지요.
3월 모의고사에서 한 등급씩 올렸다고 자랑했습니다.
대략 들어보니 경희대나 중앙대 선 점수를 받은 것 같습니다.
부모는 이 성적에 만족하지 못했고, 일단 중간고사에서 평균 2등급을 받으면
베이스 기타 동아리에 가입해도 좋다고 했다네요.
그러고 중간고사를 보고, 성적표를 가지고 왔습니다.
원래 2학년 내신 성적은 잘 받기가 힘듭니다.(그 이유와 원리는 담에 쓸께요.)
당연히 편균 2등급이 안되었지요.
뿐만 아니라 수학 1이 4등급 나오는 바람에 잡안 전체가 우울해진 거죠.
아이는 고민에 빠졌고, 몇 일 지나 폭탄 선언을 한 것입니다.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기는 글렀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승부를 내겠습니다."
"그게 뭔데?"
"베이스 기타! 학원에 다니고, 직업 위탁학교로 가겠다! 그래서 서울예전이나 호원대에 가겠습니다!"
"호원대?" "네, 베이스 기타 분야에서는 그 대학이 서울대나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 베이스기타를 평생직업으로 먹고 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거죠.
아이는 계속 데모를 하고 있었고요. 기타 학원을 알아보며 아예 책을 놓은 것이죠.
휘문고에는 타바스코라는 밴드가 있습니다.
고교 밴드 중에서 널리 알려진 팀으로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있습니다.
이들 중 베이스기타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3학년 학생 있었습니다.(아래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휘문고 밴드 타바스코>
교항악단에서 20여년 연주를 하시다가 우리학교로 오신 음악선생님도 계시고,
작곡과를 나오신 젊으신 음악선생님도 계시고...
지난 화요일 조카를 휘문고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연주를 시켰습니다.
상당히 긴장했지만
삼촌 앞에서, 타바스코 선배들 앞에서, 음악선생님 앞에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자신의 고집이 스쳐지나는 한 때의 바람이 아니라, 강력한 신념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눈물겹게 혼신을 다하여 연주를 하더군요. 문외한인 제게는 대단한 연주 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웠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선배들과 음악선생님께서 한 마디씩 했습니다.
아마추어로서는 가능성이 있지만, 프로로서는 재능이 안된다.
네가 프로가 될려면 이미 서울 시내에 소문이 쫙 퍼져 있어야 하고,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서울 예전도 가고,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야 기타로 밥먹고 살 수 있는 거거든....
조카의 안색이 하얕게 변하고, 눈에 힘이 빠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긴 기타를 메고 교문을 나가는 뒷모습이 너무 안스러웠습니다.
그날 저녁 동생 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하면서 수학 학원에 갔다는 군요.
학교 축제에 베이스기타 주자로 참가하겠다고 해서 그건 허락했다고 합니다.
고맙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을 설득해서 제자리 오게 하는 것. 정말 어렵습니다.
엄마의 명령으로, 아빠의 회초리로, 담임 선생님의 면담으로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진정성이 있는 정성! 이것만이 아이를 바꿉니다.
좋은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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