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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 다시 시작을 준비하며

이 세상엔 뭐든지 댓가없이 얻어 지는것은 없나 봅니다. 준비 없이 와서 더럭 대학원을 시작하고 나니 이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40의 나이에 돌아서면 잊어 버리는 머리를 가지고  폼만 잡고 학교를 다닐 순 없었습니다. 아이들 학교를 ride 해 주고는 곧장 학교로 달려 차안에서 밥 먹고 짬을 내어 부족한 잠을 자가며 공부하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엄마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아이들, 엄마가 결정해주고 시키지 않으면 아무생각이 없는, 우리 아이들도 예외 일수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설치는 엄마를 가진 아이들 일수록 아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질 못합니다. 적어도 우리 큰 애는 그랬습니다. 초등 입학하자마자  학부모 선거에서 여자는 왜 못하냐며 그당시 가든을 운영하던 남자 학부모를 제치고 당선 되는 바람에 교장 선생님과 6학년 학부모임원들을 당황스럽게 했죠.(크게 달가와 하진 않으셨을 겁니다. ㅋㅋ) 그럴수록 그런 엄마밑에 놓인 아들은 매사가 더 소극적이고 힘들어 했습니다. 게다가 엄마표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아들 친구들을 한 둘 모아 수업을 하기 시작하니 2년이 지나가는 무렵엔 24평 아파트는 제 목소리와 아이들 소음으로  들썩 거렸죠.

더구나 그 즈음엔 전 눈에 보이는게 없었습니다. 큰애가 7살이었던가요. 하필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에...  내 하나뿐인 어머니가....갑자기 세상을 떠난것입니다...따라... 죽고,,, 싶었습니다.... 이젠 내 생에 가장 큰 우산이 없어진 하늘에 붙잡을 무엇도 ,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기신 건 평생 사업한다고 있는 재산 다 말아먹은 아버지 뒤치닥거리하다 숨겨놓은 13평 집문서 하나... 였습니다. 엄마가 죽어도 이것 만큼은 잘 보관하라던 평상시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당시 그 아파트는 재건축이 들어가서 평수가 늘어나는 만큼 돈을 넣지 않으면 팔아버려야 했죠.

차마 그럴 순 없었습니다. 분담금 1억...주변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편조차 도움이 되어줄 수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혼자 해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돈을 쓸 줄만 알았지 벌 줄도 모을 줄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허둥대는 날들이 지나는 동안 다행히 학생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해, 두해... 해는 갈 수록 학생들은 늘어났고 어느사이 난 자식들이 뒤바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영어의 필요성을 느껴게 해야 한다고 혼자서 12명을 데리고 남태평양 일주를 감행할 정도였으까요. (아마 이 때부터 겁을 상실하지 않았나 합니다)  영어에 관련된 체험이라면 집안 일도 제끼고 아이들을 이끌고 쫒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자식과 마누라 밖에 모르는 남편은 미친듯이 남의 아이들에게 열중하는 나를 이해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혼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때 남편도 자식을 포기 했더라면 아마 전 지금 이 글을 쓸 수 없었겠죠.. 우린 다시 살기위해 가족 여행을 떠났습니다.그곳은 뉴질랜드였습니다... 한 달 동안 차를 렌트해서 북섬의 이곳 저곳을 둘러 다니는 동안 전 남편의 영어실력에 놀라고 있었습니다.  불과 미국에선 대학교 때 1년 유학 한 것 밖에 없다고 했는데 10년이 넘도록 가르쳐온 나보다 더 잘 하는 겁니다!

여행에 돌아온 뒤 남편은 그 때까지 무의미하게 다니던 아버지 회사를 그만두고  저의 조언대로 영어강사 할 준비를 시작 했습니다. 도시락을 싸들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6개월을 지내더니 성균관대학교 테솔 대학원을 붙어 오는 겁니다.공부가 적격이었는지 다니는 동안에도 줄곧 탑을 하더군요. 참 재능을 알아본 순간이었습니다. 최고 학점으로 졸업한 이후 강의를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왜 내가 애들에게 미치는지 이해 해주기기 시작했고  우리는 밤새도록 수업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남편은 학원가에서도 승승 장구했죠. 워낙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다 보니 아이들이며 원장의 눈에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낮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요일도 없이 그렇게 함께 밤낯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부모가 정신없이 자기일에 바쁜사이 어느덧 아들은 6학년, 딸은 4학년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딸은 가르치는 대로 잘 따라 주었습니다 영어 말하기 대회다 뭐다 상을 휩쓸면서 영어로 하는 것엔 엄청 자신있어 하더군요.

그러나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6년을 똑같은 아이들과 함께 수업해 왔지만 단어 한번을 외우질 않더군요. 엄마가 바쁜 아이들이 그렇듯이 우리 아들도 집에서 한번 봐주지 않고 그 많은 영어 숙제를 혼자 해내라 하는 엄마를 따라 주기엔 너무 어렸습니다.  pc방에 있는 걸 잡아오기 일쑤 였고 집에서 수업하는 동안엔 방밖으로  잘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10시면 자야 했지요. 엄마가 더 예민한 고등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실정에도 전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해내지 않으면 안되었던 엄마와의 약속 때문에…드디어 재 건축이 끝나고 등기가 제 이름으로 나오던 그 날, 그 날도 소낙비 내리는 여름이었습니다. 창문을 열어 놓고 또 한번 실컷 울었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남편도 나도 이젠 강사로써 승승장구하던 그즈음이었지만 아이들을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다른건 몰라도 함께 밥먹고 함께 책읽고 싶었습니다. 병아리가 엄마 닭을 따라 다니듯이 엄마로써 모든  걸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내품에 있을 때 만큼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돈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다 버리자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결혼할 때 필요한 아파트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한 시간들일거라고.. 이제서야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 자신만의 인생의 황금기를 산다고 생각한 남편에겐  너무나 힘든 결정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랫듯이 내 남편은 死地 라도 나와 함께 해야 했기에 결국 다 버리고 떠날 수 있었던 겁니다.

미국에 와서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역시 오자마자 스포츠에 목숨을 걸더군요. 농구부터 시작해서 풋볼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끝나면 족히 3시간은 운동에만 미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책만 읽어도 좋다고 했지만  온지 일년이 지나도록 수학 한 문제도 거들떠 보지 않는 시간엔 정말 속앓이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다 되어가는 겨울이었습니다. 한국 나이로는 중3을 올라갈 무렵이었지요. 느닷없이  "엄마, 난 역시 운동은 아닌가봐. 공부나 좀 해봐야 겠어"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 그렇게 갖은 협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더니 난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먼지가 싸인 1학년 수학책을 들더군요... 여전히 영어 공부는 안했지만  수학은 인강을 들으며 혼자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후로 지금까지 일년을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갔다 오면 밥을 컴퓨터 앞으로 가져가 3시간은 앉아 있더라구요. 국어도 영문법도 하면 좋겠지만 욕심을 내자면 끝도 없겠다 싶어 그냥 지켜 보았죠. 그런데다 이 욕심 많은 엄마는 이곳까지 와서도 자신의 대학원 공부를 시작해 놓았으니 아이들은 대학원 시험 볼 때마다 최소 한달 이상은 또 방치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참, 부모 노릇 하기는 정말 어려운가 봅니다. 다른 집 애들은 알아서 잘 해주는데 라고 원망?을 늘어 놓으면서 전 제 공부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지난 10월 이었을까요? 친구 딸이 외고에 지원 했다고 하니 외고가 뭐냐며 궁금해 하는 겁니다.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는  놈이라 했는데 저는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한국을 떠나온지 3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입시와도 담 쌓고 있어서 갑자기 정보를 찾으려니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신이 뭐냐, 특목고가 뭐냐 물어 보면서 아들은 자신의 미래에 관심갇기 시작 했습니다. 아직도 중학교 1학년의 정신 수준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찌 되었건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은 아들의 입에서 제일 먼저 나왔으니까요. 학교 공부 만으로도 올 A를 받고 하고 싶은 운동, 악기, 책읽기, 주말이면 영화보기 등등 한국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중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데 가고 싶다고 할 줄은 몰랐죠. 그냥 있으면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은 무난하게 들어가니까 잘 생각해 보라고  살짝 협박도 했지만 그래도 한국을 가야 한다고 우겨 대는 겁니다. 아시아에 중국의 끄트머리에서 아무도 안쓰는 한국어쓰며 서울대를 나와도 과외로 먹고 산다지만 '영어 잘하는 한국인'으로 세계를 누비며 살고 싶다는게 이유 였습니다. 자고나면 밥상에서 차안에서 읊던 제 말이기도 했지만 아들의 입으로 다시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유학을 결심 하면서 살림을 다 부칠 때 사실 미국에 눌러 앉을 생각이 없진 않았습니다. 이유는 엄마도 없는 한국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거죠. 미국사람들이 안 하는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 힘 들어서 그렇지 먹고 사는덴 지장도 없고 더구나 조용한 성격의 딸은 역시 미국에 와서도 상을 휩쓸며 정말 행복해 하고 있었으니까요. 미국에 온 유학생의 일부는 불법으로 비자를 바꾸면서까지 눌러 앉는 경우가 수두룩 한데 공부는 한국에서 해야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아들의 말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대부분 내가 떠들어 온 말일지라도 그것이 어느새 아들의 생각으로 걸려져 마치 자기 생각인양 말하는 것이 대견했습니다.

'착각하는 엄마가 될 지라도 믿어보자. 다시 또 천만원을 날릴지라도 다 싸들고 가자.'

졸업시험을 앞두고 시험 준비하랴,정보 수집하랴 바쁜 나날에 한줌 후회가 일었습니다. 좀 더 정보력을 갖추고 진작 준비를 하게 했다면 좀 덜 고생하게 할 텐데, 학교를 들어가지 말고 좀더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주고 함께 공부해 주었다면 더 도움이 됐을텐데 하는....

그러나 언제나 그랫듯이 '가장 늦었을때가 가장 빠르다'고 이제 철이 든 아이들은 그말에 의지하며 혼자서 중학교 수학 심화를 공부하고 영문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국어까지는 자신없지만 그동안 읽어온 책읽기에 희망을 걸 뿐입니다. 엄마인 저는 아무것도 못 해주고 그저 아이들 각자에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일대기 플랜을  그려 주었습니다. 국사 연대표처럼 17살엔 무엇을 이루어야 하고 20살엔... 26살엔 미국으로 대학원을 오자, 30살엔... 하며 40살까지 표로 그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주었습니다.

수능이 뭐냐,특차가 뭐냐 물어보는 아들에게 미처 한글을 못 떼고 초등학교 입학 하던날, 화장실을 손바닥에 써주는 그 모습으로 하나씩 알려 주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나역시 내아이의 우산이 되어 주기 위해서 모르면 배워서라도 함께 가려구요...

미국에와서 내가 얻은 건 아이들의 영어가 아니라  삶의 진정한 의미였습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일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비교 당하지 않고 자기가 한 만큼의 결과에 만족할 수 있었고 스스로를 대견해 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자신감을 얻은 겁니다.

 삶은 여행이지 목적지가 아니라고 했듯이 나와 우리 가족은 또 새로운 여행을 위해 다시 시작을 준비를 시작합니다. 돌아가면 이전의 생활보다 더 힘들겠지만 우리는 무엇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 함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