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교사] 자유게시판 (자녀와 ID 공유 금지)

애당초 영어가 목적이긴 했지만 영어만 배울라치면 필리핀이든 뉴질랜드든 아니면 가까운 중국의 국제 학교라도 갈 수 있었을 겁니다. 효과면에서 굳이 미국일 필요는 없었죠. 오히려 환율의 리스크를 따지면 저도 중국행을 택했을 겁니다. 필리핀에서 힘들게 토플을 따온 남편도 뉴질랜드에 사는 언니도 중국 국제 학교를 보내는 친구도 모두 저마다의 조언으로 권유했지만 저는 미국이어야 했습니다. 왜냐구요?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사춘기를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세계를 보는 시각을 가지게 하자는 그것이 실질적인 바램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전세 보증금을 다 털어 미국에 왔지만 미국은 말 그대로 없는 자들 에겐 기회의 땅 이었습니다. 유학생이라는 신분 덕분에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료 급식과 모든 활동 프로그램에서각종 스칼러쉽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남편은 나이가 40을 훌쩍 넘어 있었지만 학교 에서는 근로 장학생으로 비싼 사립 등록금을 할인받으며 일할 기회를 얻었을 수 있었으니까요.

한번은 온지 6개월이 막 지난 가을  땡스기빙 전날로 기억 합니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을 다듬기는 그 때까지만도 비용이 엄두가 안났던 정착 초기 였었죠. 같이 힘들게 유학생활은 하던 이웃이 기꺼이 손질해 주겠다고 딸아이의 뒷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었습니다. 순간,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이의 목뒤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눈을 의심하며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들춰보니 예리한 가위 끝이 아이의 연약한 뒷머리부분을 기역자로  잘라 놓은게 아니겠습니까... 모두 다 패닉 상태 였습니다. (아직도 손이 떨리는 군요...) 한국 같으면 119를 부르든 아니면 급한대로 업구라도 뛰어 나갔겠지만 그 순간에 든 생각이라는 것이 이곳에서 911을 부르면 기본 1000불에 병원비는 가장 간단한 수술일지라도 0000은 들거라던 주위의 말들이었습니다.

아!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피는 멈출기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주말마다 나가던 한글학교의 이사장님이 생각났습니다. 땡스기빙 만찬을 즐기고 계시던  그 시간에 다급한 전화를 드렸더니 그분은 서둘러 우리가족을 병원으로 불러 주시곤 간단한 수술을 해 주셨던 겁니다. 눈물로 지켜본 수술이 끝난 후 어쩔 줄 몰라 서 있는  우리에게 "제가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라고 먼저 한마디를 꺼내 주시더군요.. 그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울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돈 으로는 갚을 수 없는 이 은혜를 어찌할까 하다가 저 역시 한글 학교를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인 2세들을가르칠 수 있는 영광을 얻게까지 된 것입니다. 

기회의 땅, 그말은 배고픔에 못이겨 넘어온 초기 유럽인이나 나에게나 별 다름이 없어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세명이면 두개를 끓여 국물까지 다 먹이던 시기,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 해야 한다며 그 흔한 햄버거도 잘 안 사 먹였습니다. 오로지 공부하고 책읽히고 운동하고 아낄 수 있는 건 먹는 것 입는 것 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서울에서 남편의 누나 두분이 우리 사는거 보러 오신 겁니다. 미국이기는 했지만 관광할 데 라고는 인디언 유적지가 다인 이곳에  식구중에 가장 가난한?  우리가 미국으로 온 가족이 와서 살겠다고 대책없이 넘어 온 것이 안쓰러우셨는지 큰 선물을 사들고 오신겁니다.

아버지도 없이 편모에 가난한 대학생인 며느리를 탐탁치 않아 하셨던 우리 시부모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 한지 15년이 지나도록 그때까지도 사실  전  시집에선 아웃사이더 였습니다. 잔치집에 부억 구석에 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부억데기... 나 스스로도 그런 처지에 벗어 나려고 노력도 안했었죠. 6남매 중 막내였던 우리시집에선 가끔 가족끼리 골프를 치러 놀러 가곤 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어리기도 했지만 전 언제나 호텔방에 남아서 아이나 돌보며 소외감 뭐 그런 걸로 눈물 훔치기 일쑤 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큰고모님이 선물로 사오신건 골프채 였던 겁니다. 남편이 나를 위해 누나께 부탁했던거죠.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에 골프를 칠 수 있다는 누나의 말에 큰 맘 먹고 나를 위해 통장을 털었던 겁니다. 참...황당하기도 하고 ..원래 눈물도 많은데 내 키만한 남편을 끌어안고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큰 누나가 다녀가신 후론 우린 아웃백 스테이크 집을 안에서도 구경해 볼 수가 있었고  한국에 돌아오면 춘천 골프장에서 식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설렘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섭고 차갑다고만 느껴졌던 아버님이 골프연습 많이 하고 오라는 말씀까지 전화에 흘러 들려 오는 것 이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내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꿈꾸어야 할 여고시절, 친구의 모의고사 문제집을 대신 풀어주며 떢볶이를 댓가로 얻어먹던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 주책 없이 눈물이 나는군요..) 친구들이 미팅이며 엠티로 바쁠 때 난 학생 한명이라도 더 과외를 하지 않으면 학비를 못 낼 판이었던 시절에 남편을 만났습니다. 딸 넷을 내리낳고 얻은 귀한 막내 아들의 베필 로는 성에 차지 않으셨음을 지난 시절엔 왜 이해해 드리려 하질 않았을까요? 이것이 이 미국에 와서야 얻은 소중한 깨달음 중에 하나였습니다.

2009년, 그해는 틀림없는 나의 해가 되었습니다. 막연히 아이들의 영어를 위해 가야 한다고 비행기를 탄 그 이후부터 일년이 지난 가을, 난 우리 남편의 후배로 대학 새내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새벽엔 아이스크림집 청소를 나갔어도 15불이면 18홀을 돌 수 있는 그림같은 골프장에서 남편과 어렵지 않게 라운딩을 할 수 있었죠.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 했습니다.

워낙 나서는걸 못하는 남편이지만 시켜놓으면 대통령도 할 사람인걸 저만은 알기 때문에  한인회 테솔회장으로 올려 놓고 우리부부는 지역 교민들한테 학교기금을 모금해가며 그동안의 인맥을 동원하여 학교 안에서 한국을 알리는 큰 행사도 해내게 되었습니다. 그 행사를 계기로 OCU에서 한국학생의 세배가 넘는 중국, 인도애들을 제치고 학교 지원금을 타내는 성과도 올렸으니까요.

세상 밖으로 나와보면 아실테지만 일본 중국인은 알아도 한국인이면 다 north korea? 하고 되묻습니다. 그나마 cnn뉴스에서 한두번 들었기 때문인거구요. 대부분은 아예 관심도 없지요. 적어도 오클라호마는 그렇습니다. 이쯤 되니 아이들은 파자마 파티다 풋볼 대회다 하며 여기저기 ride해주기가 바빴고 우리도 통장에서 돈 떨어지는 것만 보던 초조함에서 벗어나 미국이라는 바다를 누리기 시작했던 겁니다.

우선 여행이 아이들을 위한 나의 가장 큰 미션 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전도를 펴 놓고 여행지를 살폈습니다. 첫여행지로 서부여행을 찍었습니다. 물론 돈은 없고 경험도 없었으니 첫 여행에서 정말 죽을 고생했습니다. 정확히 가운데인 우리 주를 벗어나 하이웨이로 이틀을 달려가서 그랜드 캐년을 만날 수 있었죠.  그리로부터 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록키 마운틴을 넘어 일주일을 미 중 서부를 순례했습니다..

재미를 붙인 우리는 이듬해 여름엔 아쉬움이 남는 서부를 다시 도전 했습니다. 이번엔 KOA 라고하는 내셔널 캠핑에 가입하고 텐트를 들고 다니는 방법을 알아낸 겁니다. 이 전보다 더 비용을 절약 할 수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은 중학교 교과서에 항상 나오는 대통령 얼굴 박힌 러쉬모아 마운틴이었죠. 역시 꼬박 이틀을 달려 30분 보고 내려와서는 텐트에서 바베큐를 해 먹고는 다음 날 8시간 운전해서 옐로우스톤을 찍었습니다. 정말 그 어마어마한 자연 앞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곰이 내려와서 텐트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는 밤을 지나 서부 중부의 네바다 사막을 가로 질렀습니다. 지도에서만 봐도 그 거대한 사막의 금광을 찿아 서부로 달리는 개척시대의 그들처럼,  뒷편의 어둠이 삼키듯이 우리차를 쫒고 그에 질세라 석양으로 불거진 하늘 끝을 따라 달리는 그 광경을 상상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렇게 서쪽으로 서쪽으로 사막을 가로 지르니 골든 게이트로 유명한 센프란시스코 에 도착 하였습니다. 이미 호텔을 비딩으로 낙찰 받은 터라 100불 밖에 안되는 금액으로 4성급 호텔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쥴리아 로버츠처럼 (물론 가진 돈은 별로 없었지만) 부티크들이 즐비한 도심을 활보하였습니다.

그리고 70마일 비치를 따라 LA를 넘어가는 중에 일대 고비를 맞이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정비를 하고 왔는데 도착 한시간을 남겨두고 차의 본넷에서 연기가 나오는게 아니겠습니까? 워낙 안전을 최고로 하는 사람인데 얼마나 놀랐는지.. 견인차를 부르고 혼다 전문매장을 찾아 검사한 결과는 엔진오일통에 떨어진 오일이 과열되면서 연기가 났던 거라는 겁니다. 참.. 차에 대한 기본 상식만 있었어도...(또 한번 무지에 대한 댓가로 200불을 날렸읍죠.)

그렇게 LA를 망치고는 아쉬움이 없게 하기 위하여 아래로 더 내려가 멕시코 국경을 찍고 세계 최대라고하는 칼스베드동굴 100미터까지 보고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행은 일종의 중독성이 있나봐요. 방학만 하면 7인승밴과 텐트하나 들고 북으로는 나이아가라에서 정통 미국이라는시카고까지,남으로는 우주기지라는 휴스턴과 걸프만을, 동서로는  보스턴 뉴욕 워싱턴을 지나 라스베가스 를 횡단하는 모험을 강행하게 되더군요. 이젠 7월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맟추어 갈수 있을 정도로 여행계획을 짜는 데엔 박사가 되어 있었죠. 그 날 우리는 워싱턴 마뉴먼트 앞에서 미국 최대의 불꽃 놀이와 미국인들의 함성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이라는 바다에서 세상밖으로 나오기 전까진 내가 있는 그곳이 내 인생에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어는 나에게 있어서 한 때 삶의 수단이었고 내 아이들의 성공의 주춪돌 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어느날.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우게 하는 것보단 세상을 보여주자...  도기가, 음미체를 외우게 하느니 차라리 감자, 배따라기를 읽혀 오겠다고 삐딱한 발상으로 영어책 대신 한글책을 싸 들고온 엉뚱한 제가 한 선택과 결단은 무식한게 아니었나 봅니다.  이제 나의 아이들은 미국이라는 바다에서 왜 영어를 해야 하는지 체감하고 그렇게 억지로 읽히려던 한국책, 미국소설을 들고 놓질 않습니다.

다음은 마지막편으로 <시작을 준비하며 >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쓰다보니 길어 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