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교사] 자유게시판 (자녀와 ID 공유 금지)

아주 오랜만에 스홀에 글을 쓰네요^^

직장 인터넷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스홀에 접속 못하게 된 이후로 그냥 핸드폰으로만 가끔 들어왔어요. 얼마전에 업무상 필요해서 블루투스 키보드를 장만했는데 진작에 살 걸 이게 아~~주 편리하더라구여^^

관심대학 정보 알리미를 설정해놓았는데 몇군데 대학 정보가 등록되었다고 알림이 와서 스홀에 들어왔다가 설레는 바다님이 중등스터디 모집글 올리신 걸 우연히 읽었어요..처음 스터디 시작할 때도 생각나고 정말 잘 활동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오랜만에 안부 남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쓰다보니 좀 깁니다^^ 지루하신 분은 패쓰하셔도 ㅎㅎ)

작년 한해는 처음으로 수험생 엄마하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운 해였네요. 수시의 배신과 정시의 고뇌를 다 겪어내면서 미처 몰랐던 아들램 속마음도 알게되고....내가 그동안 나랑 친한 아들녀석이라고 아이를 다 안다고 자만했구나, 내 이기주의로 내가 원하고 생각하고 싶은 모습으로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도 했어요.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함께 자란다고 하는데 저도 한뼘만큼 자란거 같아요.

수시원서를 쓸 때만해도 수시대박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아닌 기대감이 있었어요.
6월9월 모평때 재수생이 들어오면 고3은 한등급 이상 밀린다는 얘기에 은근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들램은 자기 페이스대로 잘 유지하더라구요. 본인 스스로도 "어? 나 밀리지 않네? 할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도 얻구요....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수시지원전략표를 보신 담임쌤께서 엄청 잘만들었다고 칭찬하시며 다음에 고3 담임하시면 샘플로 쓰신다고 복사해 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혼자 흐뭇하기도 했어요. 그동안 나름 입시공부한다고 했던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에요(참 철없는 ㅋㅋㅋ....)

수시합격자 발표를 하나 하나 확인하면서 처음으로 이게 참 못할 짓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하루에 6개 대학이 한번에 발표가 나면 좋으련만 한군데 불합격되면 다음 대학에 희망을 걸어보고 다시 실망하고 하는 일을 겪어내는게 쉽지는 않더군요... 더군다나 자기가 주력대학이라고 생각하고 지원한 대학에 불합격되었을때 아이가 너무 실망하는걸 보는게 참 못할 짓이다 싶었어요.

수능시험에서 그동안 늘 잘보던 영어를 결정적으로 망친 덕분에(ㅠㅠ) 정시는 재수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점수에 맞춰 지원했어요. 16학년도 입시는 입시제도가 바뀌는 시점이어서인지 하향지원이 확연해서 초합이라고 예측한 곳까지 예비를 받게 되니 참 뭐라 말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도 수험생활이나 입시를 치르면서 아이와 큰 갈등도 없었고, 입시는 잘 모르는 남편도 아이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는 건 인정하고 있기에 올해는 운이 없었다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재수하는 걸로 결론이 났지요. 1월말에는 그동안 고생한 아들 힐링도 할 겸 일본으로 가족여행도 다녀오구요..,,

근데 정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더라구요. 재수학원 첫날 지원대학에서 저한테 추합전화가 왔어요. 전 당연히 안가는 걸로 생각했는데 포기하려면 아이 목소리로 녹음해야 한다고 해서 학원에 연락을 했더니 이 녀석 그냥 등록하고 다니고 싶다는 거에요. 재수하는 거 너무 힘들다구요... 그런 속마음 얘기는 처음 들어서 계속 전화 통화만하다가 일단 생각할 시간을 벌고자 4시반 넘어서 급하게 등록금 납부했어요. 5시가 등록 마감이라 돈 찾는 거부터 참 스펙터클한 영화 한편 찍었네요... 컴퓨터 끄고 마감하고 나가려는 은행 직원한테 대학등록금이라고 사정해서 돈찾는 동안 4시55분에 입금처리부터 했어요...그나마 직장에 있는 은행출장소 직원이라 얼굴을 알기에 해주더라구요...정말 너무 급하니까 얼굴에 자동으로 아이언맨 가면이 ㅋㅋㅋ

그날 저녁은 아들이 제 태도에 상처받았다고 심통이 나 있어서 아빠랑만 얘기하고 다음날 등록포기 시간인 4시 이전에 아들의 결정을 전화해 주기고 하고 재수학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했어요. 결국 그냥 등록하겠다고 하는데 제가 도저히 포기가 안되서 급하게 휴가내고 아들은 조퇴하고 만나서 대화를 했는데 이 녀석이 울더라구요. 그동안 자기가 수험생활하며 힘들었던 것들, 앞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들, 재수에 대한 두려움들을 얘기하는데 아들이 겉으로는 늘 웃고 표현을 안했지만 혼자 속으로 참 힘들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결국 일단 등록은 유지하고 반수쪽으로 가닥을 잡는 걸로 결론내리고 집에 왔는데 얘가 계속 고민을 하더니 그냥 재수하겠다고 하더군요. 8시에 학교에 전화해서 등록포기의사 밝히고 전산망 열어서 등록포기하고 나니 화요일이 정시추합 마지막날이었어요. 예비번호 아들 뒷번호였던 아이는 마감 한시간 남겨두고 추합전화를 받았을거에요^^

왜 생각을 바꿨냐고 하니 자기도 많이 아쉬운데 재수의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웠다고... 근데 나중에 자기가 살면서 계속 후회하게 될 거 같더래요. 힘든게 싫어서 도망치는거라는 생각이 들고 오기도 나고 ... 안하고 아쉬워하기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아들 책상에 붙여둔 좌우명이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에요
(아들이 좋아하는 사탐 이지영쌤 어록이죠)

결국 그렇게 재수하는 걸로 결정이 되었는데 이 녀석 좁은 재수학원 책상에 앉아있는게 힘든지 다음날 괜히 등록취소 했나보다고 해서 한번 더 무너지게 했죠....

주말에 원래 다녔던 영어학원 원장쌤이 수업료 안받을테니 그냥 나와서 수업들으라고 해서 상담도 할 겸 학원수업 다녀오고나서 표정이 많이 편안해졌어요...

아들램은 요즘 스스로 자기는 조울증이라고 해요. 공부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는데 막히는 문제가 나오면 막 불안해졌다가 풀리면 다시 기분 좋아지고 그렇다구요...
그래서 그냥 아무생각없이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요....

외할머니랑 통화하면서 걱정하시는 외할머니께 이제 괜찮다고 안심시켜드렸대요. 처음엔 학원 책상에서 밥도 먹고 하는 생활에 이게 뭔가 내가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적응했다구요. 학원규칙이 재원생은 복도에서도 서로 말도 못하게 하고 여학생하고는 아예 대화금지네요. 씁쓸하면서도 재밌는건 재수학원에서 거의 동창회하는 분위기에요... 중학교 친구, 고3 같은 반 친구, 같은 동아리 친구, 학원 친구 등등 ㅎㅎㅎ

올해 한해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 얻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냥 다니려는 녀석한테 제가 재수를 강권해서 저 올해 아들램 뒷바라지 열심히 해야해요^^

자기는 고3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노라고, 재수하면서 더 열심히 할 자신이 없다고 하며 울던 아이를 떠올리면 제가 잘한건지 못한건지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진인사대천명을 되새기며 다시한번 도전해 보렵니다.

재수생활하면서 흔들릴때마다 마음잡아주는게 엄마의 역할 이겠지요. 세상에 의미 없는일은 없다고 재수생활하면서 아들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요즘 아들녀석이 하는 말이 "재수를 해보지 않은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에요 ㅋㅋㅋ 작년까지는 "내 인생에 재수는 없다" 였거든요 ㅎㅎㅎㅎ

그리고 저희 문과스터디는 매월 정기모임 열심히 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연극도 보고 집에서 모임을 하기도 하고 소풍도 가고 매일 카톡으로 일상사 대화도 하며 수험생 자녀를 둔 애환도 나누고 서로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멘토들이세요... 힘든 수험생 부모노릇도 스터디가 있어서 수월하게 겪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해요^^
스터디원끼리 우스개소리로 이제는 스터디에서 계모임(ㅋㅋ)으로 진화했노라고 해요.ㅎㅎㅎ
작년에 논술 시험 한창 보러 다닐 때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그런 의심을 했었어요. 엄마들이 자기들 만나서 모임하려고 우리를 같은 대학에 원서쓴거 아닌가 하는....(아이들은 논술시험보고 저희는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마시며 같이 기다렸거든요^^)

올해 새로운 입시가 시작되는데 저희 아들과 같은 재수생도, 새로 입시에 도전하는 고3들도 모두 건강하게 수험생 생활 잘하고 좋은 결과 얻길 기원합니다.^^

P.S. 저희 둘째이신 딸램은 올해 고딩이 돼요^^ 여고생이 되는 울 따님도 자기 길 잘 찾기를 기원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