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교사] 자유게시판 (자녀와 ID 공유 금지)

댓글로 쓰기엔 사연이 너무 길어 이렇게 글쓰기로 대신합니다.

저희 아들 초등학교 1학년때 일입니다.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이가 엉엉 펑펑 울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정도의 서러움에 복받쳐 귀가했습니다.

왜그러냐고 물어도 대답도 못하고 학교에 가기싫다, 전학시켜달라 등등 저희 아이 성격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짝꿍을 죽여버리고 싶다'라는 표현을 할 정도의 극한의 상태인 아이에게 정말 어찌할바를 몰라 애를 먹었습니다.

겨우겨우 안고 달래서 진정시키고 한참 후에야 아이의 입이 열렸습니다.

여자 짝꿍이 자기에게 계속 시비(?)를 걸고 못살게 해서 대꾸를 하지 않았더니 짝꿍아이가 오히려 선생님에게 저희 아이가 자신을 못살게 군다고 일렀답니다.

아마도 짝꿍이었던 그 여자아이는 시비를 걸었다기 보단 저희아이랑 친해지고 싶어 했던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쨌든, 담임선생님은 저희아이에게 정말 못살게 굴었냐고 물으셨고, 워낙 말이없고 소심했던 저희 아이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거 같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담임선생님은 저희 아이가 인정한다고 판단하셔서 야단을 치셨던 거지요.

엄마가 소리만 질러도 매를 맞는거 이상의 상처를 받았던 저희 아이로서는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로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으니 엄청난 상처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일상적으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들입니다.

갓 초등학교 입학을 시킨 부모입장에서 아이의 입에서 극단적인 표현이 나올정도의 상처라면 그냥 무시할 수 없었고, 주위의 권유에 따라 선물(?)을 사들고 학교를 찾았습니다.

선생님이랑 상담을 했고 연세가 있으셨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지금 이 시점에 짝꿍을 교체한다면 저희 아이의 머릿속에 짝꿍은 영원히 나쁜아이로 자리잡을 수 있으니 관계개선을 시켜준 후에 차츰 다른 짝꿍과 교체하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참 사려깊으신 분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돌아왔고 아이에게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방문한건 토요일이었고 아이가 월요일 학교를 다녀왔는데 얼굴의 화색이 돌고 뛸듯이 기뻐하며 들어오더군요.

아이왈 "엄마 나 짝꿍 바뀌었어요."

순간 전 황당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건가 싶더군요.

선물(?)의 힘인건지... 아니면 순수하게 선생님의 판단이 하루빨리 바꿔주는게 낫다고 생각하신건지...

결론은

그 사건 이후, 저희 아이의 기억 속에 그 여자 짝꿍아이는 거짓말로 자기를 혼나게 한 아주 못된아이이고, 스승의 날 감사의 편지를 쓸때마다 아이의 감사의 대상의 1학년 담임선생님이시더군요.

지금도 아이는 제일 좋았던 담임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었을때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라고 합니다.

그 사건 이후로 담임선생님을 다시 찾아뵌 적은 없지만 아직도 전 가끔 그 결과의 힘은 무엇일까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곤 합니다.

아이처럼 단순하고 순수하게 선생님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제가 나쁜 학부모일거라는 생각을 해보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