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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철없는 할머니

등록 LV46alex할배 조회 611 추천 0 등록일 2020-01-13 오전 3:16:31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여전히 철없는 할머니

==

" 문영애 워싱턴 문인회 "의 글 펌입니다.

 오래 전에 여기에 올렸든 글이지만 날이 많이 지나고 보니 종이의 글 색은 

낡아 바래졌지만 그 글 속에 담긴 뭔가가 나를 여기에 다시 올리게 하군요.

.

여섯 살 난 외손녀 카야는 운동화 끈을 매려고 현관 끝자락에 앉아 엄지와 검지로 끈을 동그랗게 잡고 있다. 이미 2분은 지난 것 같이 느껴진다.

.

나머지 왼쪽 끈까지 매려면 앞으로 5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급한 마음에 매어주려 하니 뿌리친다.

.

꿀밤을 한방 주고 싶지만 참는다. 내 딸인 제 어미는 끝까지 참아주기 때문이다. “오케이”하고 일어서는 얼굴엔 만족감으로 얼굴이 환하다.

.

나의 조급했던 마음도 스르르 가라앉는다.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 같이 가는 길이다.

.

길가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서 지팡이라고 짚고 걷는다.

허리 수술을 받은 뒤에 할아버지가 어정쩡하게 걷는 모습을 흉내 내며 깔깔거린다. 걷는 아이의 뒤를 밟아가니 내가 살아온 발자국도 함께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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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가장 많이 후회되는 것은 나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많이 보듬어 키우지 못 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자상하지 못하고 성품이 급해서이기도 하지만 젊었을 때 철이 없고 아는 것이 없었다는 말이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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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한 번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같이 뼈저리게 느꼈다면, 난 냄비의 때를 그리 빡빡 문지르거나, 냉장고를 해부하듯 꼬챙이로 후벼 파면서까지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

또 거실의 먼지를 슬쩍 발로 밀어 놓았을 것이고,

남편의 바지를 만들어 입힌다고 재봉틀 앞에 앉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

시부모님의 말 한 마디에 바보 같이 가슴앓이를 하고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세 아이들이 자라면서 번갈아 가며 치마를 붙잡고 감기려하는 것을 늘

바쁘다는 핑계로 닭 쫒듯 두 팔을 안에서 바깥으로 저으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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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그들은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멀리 보이는 전봇대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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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내 가슴 깊은 곳을 그들에게 내밀어 보였지만

아이들의 관심은 이미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 버린 지 오래였다.

.

사람 마음이 유리병보다 더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일찍 알았더라면

아이 하나하나가 다 개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격에 맞는 대접을 해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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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편애하지 않고 키우겠다고 생각하면서 한 뭉텅이로 취급했다.

내 자식이니 내 소유라 생각했다. 잘 되라고 한 잔소리이니 다 이해하리라 믿었고, 서운한 말도 소화시키려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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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피는 물보다 진하므로 우리의 관계는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 줄 알았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것과 모든 문제는 깨어진 관계로 시작된다는 것을 한참을 살아보고서야 깨달았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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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관계는 관심과 배려하는 마음이 소통될 때 이루어지는데

그게 남에게만 해당 되는 것인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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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구이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판단했다.

등이 따스하고 배부른데 무슨 상처를 받느냐며 더 따뜻한 관심, 배려, 다독거림을 양육에서 잊고 살았으니 껍데기만 길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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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는 것이 반드시 겉으로 드러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진즉 알았더라면 아이들의 마음 안에 좋은 것으로 듬뿍 채워 주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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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여행을 많이 데리고 다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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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서 남 주느냐?”는 말 대신 “초초해하지 말고 많이 놀아라!”라고 얘기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멋있는 엄마로 기억될까?

.

칭찬 보다는 늘 부족한 것을 지적했고,

가진 것에 감사하자고 위로하기 보다는 더 성취하라고 안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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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과 사랑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라고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지만 표현하는데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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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희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 하다.”는 말은

자꾸 미루며 내 마음 속에만 깊이 감추어 두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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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걸. 아끼지 말 걸, 즐길 걸,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다시 현관 앞이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실이 난장판이다.

.

책은 소파에 이리저리 누워있고,

퍼즐은 마룻바닥에 뒹굴고 있다.

.

부엌 테이블에는 색칠하는 책과 색연필이 널 부러져서 자고 있고,

색색가지의 리본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웃고 있다.

.

가위는 하품하듯 입을 벌리고 있고,

아이가 제 일에 몰두하는 사이사이에 내가 보던 신문은 심장을 드러내고 돌아 앉아 있다.

.

정리가 안 되면 미칠 것 같은 나이지만

외손녀가 돌아갈 내일까지는 하는 수 없이 참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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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조금 전에 힘들게 맨 운동화를 홱 벗어버리고 언제 앉았는지 하얀 도화지에 꽃을 그린다. 아까 공원에서 본 민들레란다.

위에다 ‘flaur’라고 쓰고 아래엔 ‘kaya’라고 사인을 한다.

.

요즈음 이 아이는 제가 발음하는 대로 글을 쓴다.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대부분이다.

.

그러나 아이의 과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틀렸다고 인정할 때까지

지켜보아야 한다는 게 제 어미의 이론이다.

.

절대 고쳐주지 말라는 딸의 부탁이 있었지만 입이 근질근질하다.

그런 입으로 숨을 길게 들여 마시며 “굿~”이라고 해 주었다.

.

딸이 철자를 틀리게 쓰면 그녀의 이마를 콩콩 때리던 옛일이 떠오른다.

싱크대에서 사과를 깎다가 뒤돌아보니 아이는 가위로 리본을 싹둑싹둑 자르고 있다. “아이고!”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

“그건 할머니가 선물 포장하려고 모아 둔 것인데…”

아이가 나를 빠끔히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

“왜 할머니는 별거 아닌 물건에 그렇게 화를 내세요?”

6살 손녀에게 한 방 맞고 난 어리벙벙한데

아이는 여전히 풀칠을 하느라 바쁘다.

핑크, 노랑, 파랑, 초록 리본조각들이 도화지에서 생일 케익으로 살아났다.

.

초를 하나 꽂아야 하는데 보라색 초가 좋을 것 같은데,

보라색 리본과 불꽃으로 쓸 빨간 리본이 더 필요하단다.

리본상자가 있는 아래층에 같이 내려가자고 성화다.

.

옛날에 내 아이들에게 늘 하던 버릇대로

“그냥 있는 것으로 적당히 해!” 소리치고 싶지만

.

아이의 손에 끌려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속으로 구시렁거린다.

“그래 졌다. 졌어! 생일 케익이 더 중요하지!”

.

사람들이 말하기를 할머니는

오랫동안 후회와 반성을 거친 숙련된 엄마라고 한다는데,

.

난 여전히 참을 忍자를 수백 번 떠올리며 아이를 보고 있다.

여전히 철이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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