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교사] 자유게시판 (자녀와 ID 공유 금지)

<수학머리 만들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아이에게 얘기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중학교 때는 성적이 중한 게 아니고 공부머리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책을 많이 읽고 컴퓨터는 계속 공부하고, 학교 공부는 수학을 중점적으로 한다. 다른 과목은 고등학교 가서 해도 충분하다.

수학공부 요령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씻은 후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서 그날 공부한 내용을 순서대로 모두 떠올린다. 선생님이 설명한 내용과 잡담까지, 교과서등은 토씨까지, 그리고 문제풀이도 머릿속으로만 푼다. 반드시 그래프나 표, 도형을 그리고 식을 세워 푼다. 계산과정도 모두 쓰듯이 떠올린다. 계산은 통으로 암산하지 않고, 예를 들어 12*13=(12*10=120)+(12*3=36)=156의 과정을 모두 떠올리는 것. 막히면 즉시 교재나 노트를 확인 한다. 끝으로 친구에게 가르치는 가상상황을 설정하여 전체를 빠짐없이 머릿속에서 설명한다. 다른 과목도 필요하면 그렇게 하고, 수학만큼은 반드시 매일 실시한다.”

이후로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확인하지 않았고 성적표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중고등학교 전기간 동안 성적표 확인 안함). 성적표를 확인하거나 물어 본적은 없지만 아이가 최상위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아이는 교내 통신동호회(pc통신 천리안)의 관리자를 맡고 있었습니다. 2학년 때부터 관리자가 되겠다며 열을 올리더니 졸업하는 선배관리자로부터 후임자로 지명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이 동호회가 교내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관리자의 영향력이 대단하여 교내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전교회장과 함께 교무실에 호출되어 여론 조정등의 사태수습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이는 중학교 시절을 통신 동호회장의 경험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이 보냈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여자 친구와 너무 가깝게 지낸다고 염려하는 전화가 아이 엄마에게 온 적이 있었지만 금방 지나가는 바람일 것이므로 신경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하루는 아이 엄마가 ‘아이를 학원에 등록 시켜줬는데 학원에서 아이가 하루도 출석하지 않는다고 여러차레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왠 학원?, oo이는 학원이 필요 없게끔 길렀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확인했더니 친구들이 모두 학원(보습학원)에 가니까 학원에서 무엇을 하는 지 궁금하더랍니다. 그래서 학원에 친구를 따라 가봤는데 전혀 도움될 것 같지 않더랍니다. 그런데, 학원 직원이 등록해보라고 꼬시는 통에 거절하지 못하고 등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아이는 돈 갖고 장난친 죄로 종아리 50대를 맞았습니다.(10년만의 체벌). 다음날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 종아리의 회초리 자국이 드러나서 ‘아직도 회초리를 맞고 다니냐’며 놀림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읽고 싶은 책읽기를 꾸준히 하면서 평안한 중학시절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선택>

저희 집에서는 아이의 고등학교 선택은 전적으로 아이에게 맡겨진 일이었습니다. 평준화 되기 전입니다. 아이는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학교를 알아보더니 한 학교로 내정을 하였습니다. 아이는 그 고등학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지역 고등학교의 기독교 동아리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고 관리를 해주고 있던 저는 주 1회 정도 지역고등학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곤 했는데 그 때에 그 학교 게시판에서 아이 이름을 보았습니다. 거의 난장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알아보니 그 학교에 갈 건데 선택 이유는 그 학교에 밴드부가 있어서 입학하면 그 밴드부에 들어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다 그만둔 것 외에는 음악과 인연이 없는 아이가 웬 밴드부? 했지만 뭐라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학교는 안양고를 제외하고는 다 그만그만했고(비평준화시절), 공부는 아이에게 달린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홈페이지에 가봤는데 게시판에 그 고등학교의 입학담당 선생님이 “여러분 oo군도 우리학교 온답니다. 여러분도 오세요”라며 광고를 한 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달 정도 지나 아이는 인접시의 다른 고등학교 게시판에 판을 벌렸습니다. 그 학교는 여학교에서 그 다음해에 공학으로 전환하는 학교였는데 역시 밴드동아리가 있었습니다. 사진만 봐도 멋진 여학생 밴드의 모습은 전의 고둥학교 밴드부와 격이 달라 보였습니다. 아이는 밴드 동아리의 다음카페(인터넷카페, 이 무렵에는 pc통신은 급 시들해지고 한메일을 기반으로 세계 제일의 회원을 확보한 “다음”의 카페가 온나라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습니다. 개인 신상의 보안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한메일 회원들의 신상정보가 주민등록번호 및 거주지역까지 ‘사람찾기’라는 서비스를 통해 누구에게든 공유되던 때입니다)에 매일 출근하여 보컬에 대한 장황한 이론을 펼쳐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입학하여 그 동아리의 보컬이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노래하는 것이라고는 어렸을때 ‘울고싶어라’와 ‘내사랑 내곁에’를 꽥꽥거리는 것밖에 들어보지 못한 저로서는 좀 어이가 없었지만 이 역시 뭐라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동아리의 현역 선배들이 oo이 누구인지 입학하면 꼭 봐야겠다고 벼르는 글이 몇 건 있었습니다.

아이는 자기중학교에서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같은 시가 아니어서 애초에 갈 애들이 없었음) 그 학교에 혼자 지원하여 합격했습니다.(비평준화시절). 인접시였으므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학교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푹 쉬거나 푼돈벌이 알바를 하면서 고등학교 입학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입학일 10일 남겨두고 교사측과 재단측이 크게 대립하는 사학분규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tv 뉴스에도 나옴). 교사들은 가두 투쟁을 벌였고 싸움은 학부모들까지 가세하여 아주 커졌습니다. 3월 내내 날마다 회사를 퇴근한 후 학교에 가서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사태해결 모임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학생들까지 운동장에 모여서 소란을 떨 때 담임선생님이 학급전체를 교실에 잡아두고 있었는데 가방을 들쳐 매고 당당하게 걸어 나가 운동장에 합류한 패기로 인해 아들은 자기반에서 전설이 되었습니다. 몇 번의 가두행진, 옥외집회, 학생들의 수업거부, 철야 농성 등을 거쳐 사태는 4월 초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학교는 엉망이었습니다.

4월 중순에서야 불씨를 안은 채 진정된 학교는 정상 수업에 들어갔고 동아리는 그 해의 신입부원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기다리고 기다린 밴드부에 지원했는데 하나님이 보우하사 두 명을 뽑는 보컬에 뽑히지 못했습니다. 노래도 잘하지 못하는 애가(중학교 내내 노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음) 밴드부에 들면 연습이니 뭐니 해서 공부가 어려울 것은 뻔했으므로 저는 웬 떡이야 했습니다. 이제는 공부만 하면 되겠군ㅎㅎㅎ .

(일학년 가을에 학교 축제 시 하나있는 독창프로그램에 아이가 독창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임? 학교 초청으로 참관을 했는데 아이가 she,s gone이라는 노래를 원음높이로 했습니다. 난리가 나더군요. 강당이 가득 흔들리고요. 정말 잘하더군요. 제 아들의 목소리가 그렇고 노래 실력이 그런 줄 처음 알았습니다. 나중에 중학교에서 팬클럽까지 만들어 졌었습니다).

분규 중에 어떤 선생님이 제 아이가 반편성고사에서 일등을 했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시험 중에서 제일 쓸모없는 시험이 반편성고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우열반도 없이 그냥 반만 나누는 것이었음) 아예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여름방학을 했을 때 저는 아이에게 “일학기는 학교 분규 때문에 공부를 할 상황이 아니었으니 제쳐두고, 이제 이학기부터는 공부를 해야겠지?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계획을 세워야 할거야. 2학기 공부 계획을 한 번 봤으면 좋겠네”했습니다. 저는 대학은 당연하게 수능을 봐서 들어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수시 입시제도가 별로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두주 정도가 지났을 때까지 아이는 별다를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내며 공부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아빠가 얼마나 큰 회한의 날을 살고 있는지와 우리의 처지를 벗어날 길은 오로지 공부밖에 없지 않느냐, 아무 것도 안한 것 같지만 중학교 때까지 정말 충분하게 준비를 해 왔다. 대학 입시까지 이년 밖에 안 남았는데 이제 공부를 해야 하지 않냐. 어쩌고..., 물소리 섞인 질책에 욕설까지 얹어서 아이를 나무랐습니다. 그리고 개학할 때까지 멋쩍어져서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데면데면했습니다.

개학 후 아이가 조용히 제게 성적표(그 때에야 나온 듯)을 건네 주었습니다(중고등 전기간에 이때가 성적표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 일학기 성적은 전교 일등이었습니다. 이학년에 올라갔을 때 외고에서 제법 했었다는 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아이 말이 “그 애들은 경쟁상대가 아녜요” 하더군요. 아이는 대학합격 때까지 전교 일등을 유지했습니다.

3학년 때 수학선생님 말로는 학교에서 수학을 가장 잘하는 학생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대단한 집중을 발휘했습니다. 3학년 때 어느 날, 학부모 야간자율학습 감독 봉사를 하고 나오다가 그 학교 3학년 여학생 둘을 차에 태운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 자기들끼리 얘기 끝에 저를 보고 얘기합니다. “우리반 반장은 진짜 특별해요. 수업시간에 한 번도 졸은 적이 없구요, 어찌나 선생님을 뚫어지게 보는지 선생님이무안해하며 눈을 돌리세요. 야자 때는 저희들이 떠들면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는데 오싹해요” “몇 반인데?” 우리아이 반이었습니다.

아이는 한번 공부를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계속 했습니다. 어렸을 때에 프로그래밍 공부하던 그 실력이리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법에 대한 책을 몇권 사서 열심히 보기도 했습니다.

시험공부를 할 때입니다. 아이는 시험 공부기간 야자 시간에는 주로 급우들이 어려워하는 과목을 설명해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시험 공부는 그리 억척스럽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의가 없어 보이길래 좀 그렇네 했더니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너보다 성적이 낮은 다른 애들은 시험 때 되면 밤새워 공부하고 있지 않냐? 그럴 때는 너도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예의야. 처절하게 애쓰는 애들을 네가 별 힘 안들이고 앞선다면 그건 그 애들의 노력을 모욕하는 것이 될 수 있거든” 아이는 조용히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1학년 여름에 공부계획 세워보라고 한 것 외에 공부에 대하여 일절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에 하루는 왜 자기에게는 공부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알려 줬지 않나? 중학교 시작할 때 수학공부법 말야. 그 후에 네가 공부에 어려움이 겪고 있었으면 공부법에 대해 조언을 했겠지. 너는 잘하고 있었어. 그러니 내가 방법을 따로 얘기해 줄 필요가 없었지.

얼마 전에 아들이 말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s대 통계학과 석박사통합과정을 마치기까지) 자기는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었다고...
(평생에 저희 부부는 공부하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공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나 봅니다)

얼마 전에 자정이 다 되어 들어온 아내가 들뜬 목소리를 냈습니다. “ 오다가 보니 oo 이가 커피숍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눈이 빨갛길래 피곤할텐데 들어가자 했더니 조금 더 하고 들어온대, 뭐 할려고 이렇게 공부해 했더니 가만이 있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는 거야. ‘효도할려구요’”

부모는 아이의 인생을 준비해 줄 소명을 받습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저희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 것이며, 미래의 아이로부터 위탁을 받아 행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를 훌륭하게 준비시켜 줘야할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 소명을 무난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마치고 보니 저희 부부는 귀밑머리가 하얗습니다. 이제 홀가분하게 저희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아들을 도시에 남겨두고 저희는 귀향을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영전에 고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그 어려운 가운데서 잘 키워주셨듯이 저도 제 아들을 남부끄럽지 않게 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