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화

#1.

현관문이 열린다. 주황빛 현관등이 빛나며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가방을 짊어진 여자가 들어온다. 여자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왼쪽 가방끈을 잡아채어 거실 구석으로 가방을 내던진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형광등이 켜진다. 적막하게 굳은 거실은 TV가 켜지는 동시에 뉴스소리로 채워진다.

“FTA 수교의 효과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주장에 힘이...”

여자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남자 앵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곧장 냉장고 문을 연다. 물을 그득히 따라 주욱 들이킨다. 냉기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 가슴팍을 때린다. 입천장과 목구멍이 얼얼하게 시원하다.

“하아-.”

잔에서 입술을 뗌과 동시에 뜨거운 숨이 올라왔다. 막힌 것을 뚫으려는 것일까. 더러운 것을 씻어내려는 것일까. 그저 목이 마른 탓일까.

뉴스의 내용은 곧 바뀌어 날씨예보가 흘러나왔다.

“오늘 밤 북동쪽 저기압의 영향으로 구름이 많겠습니다. 내일 이른 아침에는 산발적으로 비를 뿌리겠으니 작은 우산 하나 챙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자는 괜히 답 없는 뉴스멘트에 인사를 해본다. 돌아올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마디나마 나누고 싶은 여자였다.

그녀는 곧 외출복을 벗고 대강 짐정리를 한 다음 커피를 탔다. 며칠을 앞두고 있는 리포트 2개가 아직 완성이 덜된 탓이다. 아마 새벽까지 리포트를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이다. 대학에 들어 온지도 2년째건만 언제나 할 일은 많고 적응은 안 된다. 여자는 아까 던져두었던 가방에서 하얗고 얇은 노트북을 꺼낸다. 밤 열시가 가까워 가는 시계. 그녀는 새벽 1시 이전까지는 일을 끝내 볼 요량이다. 앉은뱅이 상에 노트북을 올리고 바짝 당겨 앉는다. TV프로는 곧 바뀌어 드라마가 한창이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여자는 넌지시 대사를 따라 읊으며 리포트를 연다. 곧 리포트에 관련된 여러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떠오르고 손이 자판위에서 급히 오간다. 사극드라마의 장중한 음악과 가벼운 타자소리가 거실 벽을 울린다.

드라마도 끝나고 광고 두어 개가 지난 다음 토크쇼가 시작된다. 세련된 음악, 왕자하게 울리는 웃음소리, 끊임없는 박수. 여자는 문득문득 눈을 돌려 화면을 바라본다. 끝없이 흘러나오는 농담과 우스갯소리에 여자의 입 꼬리가 섬짓섬짓 올라간다. 그녀는 토크쇼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리포트를 정리해나갔다. 꽤나 모양새가 나오는 듯 싶을 때 즈음 토크쇼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여자는 노트북 화면에서 논을 떼고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어찔어찔한 빛이 눈앞을 스친다. 피곤했다. 토크쇼는 마지막까지 유쾌했고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끝났다. 시계는 자정에 가까워가고 있었다. 여자는 예상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끝난 일에 괜시리 뿌듯했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상을 치운다. 무릎을 끌어안고 TV앞에 앉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린다. 어디서나 자정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녁뉴스와 별 다를 것 없는 내용, 멘트, 사진, 영상들이 짤막짤막하게 나오고 있었다.

묵직한 하품이 길게 나온다. 눈가에는 아주 얇게 눈물이 맺혔다. 여자는 TV를 껐다. 빛의 잔상이 남은 화면이 파르스름하다. 우득 거리는 허리를 두드려가며 하얀 거실 불을 끈다. 고요와 적막. 거실 구석에 세워둔 스탠드만이 은은한 오렌지 빛으로 빛날 뿐이다. 여자는 괜시리 헛헛한 기분에 잠긴 채 방으로 들어선다. 아침에 나온 모양새 그대로 이불이 젖혀져 있다. 웅웅 울리는 머리통을 베개에 기댄다. 혼자만 있는 방에서는 숨소리만이 유달리 또렷하다. 코와 목구멍과 가슴을 들랄 날락 하는 숨소리가 귀 속에서 울려온다. 졸음은 심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박동은 점차 느려지고 늦어진다. 숨은 깊고 길어진다. 근육이 느슨하게 풀린다. 여자는 나른함에 취해 간다.

여자가 어렴풋이 잠들었을 때 쯤, 순간 그녀의 몸에 작은 떨림이 인다. 깊고 길었던 숨이 점점 얕고 짧아진다. 숨이 짧게 토막 난다. 여자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근육은 굳었고 가슴은 갑갑했다. 놀란 마음에 심장은 빨리 뛰었고 그럴수록 숨이 모자랐다. 고개조차 굳어 머리를 돌릴 수 없었다. 쿵쿵거리는 심장박동이 머리끝까지 치닫는 듯 했다. 두렵고 이상했다.

“나는 뜨거운 게 싫어.”

놀라움과 공포에 여자의 뒷목과 척추가 뻣뻣이 굳었다. 목소리다. 분명 목소리가 RSU의 오른쪽 귀에서 들렸다. 여자는 굳은 몸으로나마 버둥거렸다. 벗어나야만 해. 숨은 턱밑까지 차오르고 몸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공포에 살이 떨린다.

얼마안가 그녀의 몸이 조금씩 움직였다. 여자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안간힘을 다해 상체를 세워 앉았다. 몸은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무거웠다. 정신이 없다. 무거운 몸을 침대에서 끌어내어 거실로 향한다. 불을 있는 대로 켜고 TV를 켠다. 여자는 눈이 벌건 채로 거실을 서성거렸다. TV소리가 들리는데도 떨리는 가슴은 진정이 되지를 않았다. 여자는 두려웠고 밤은 길었다.

#2.

새벽공기는 점차 어둠을 벗고 푸르게 채워져 갔다. 거실 바닥에는 여자가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들어 있다. 거실불은 환하고 TV애서는 ‘삐-’소리가 울린다. 푸르댕댕한 새벽빛이 점차 하얗게 밝아져 갈 때 쯤 여자가 깨어난다. 그녀는 리모컨을 찾아 TV를 끄고 다시금 몸을 웅크렸다. 해가 밝아오니 안심이 되는 그녀다. 여자는 눈을 감고 가만히 어젯밤 일을 되뇌어 보았다.

‘도대체 뭘까. 왜 갑자기?’

먼저 몸이 굳고 숨이 막히면서 목소리가 들렷다. 목소리는 다시 떠올려 보아도 섬뜩했고 기억해내지 않으려 재빨리 도리질을 쳐댄다. 곧 충전 중인 휴대전화에서 알람이 울리고 여자는 부스스하게 일어나 천천히 알람을 끈다. 오전 8시. 다행히 오늘은 오전 수업이 없다. 거실 창문을 열어젖히고 아침 햇살을 쬔다. 초봄의 아침에는 아직 겨울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듯 서늘한 기가 채 가시지 않았다. 그 덕에 정신이 맑게 깨었다. 천천히 아침상을 차린다. 식사라 할 것도 없이 잼 바른 식빵과 우유 한 잔이 전부. 입이 쓴지 별 맛을 못 느낀 채 빵을 씹어 삼킨다.

여자는 곧 나갈 준비를 하고 가방을 들쳐 멘다. 어제의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건만 하늘은 그런대로 맑아 보였기에 굳이 우산을 챙기지는 않는다. ‘달칵’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여자가 나간다. 문이 잠기고 집안은 주인이 떠남과 동시에 소리없이 굳는다. 햇빛 들어찬 벽이 희다.

집안이 노을빛에 젖어갈 때 쯤 현관문이 다시 열린다.

“네, 어머니. 준호한테는 다음에 숙제를 더 줄게요. 걱정 마세요.”

과외 학생이 2박 3일 캠프를 떠났단다. 여자는 신발을 벗으며 통화를 이어간다.

“중간고사가 곧 다가오기는 해도 준호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학부모는 어린 아들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외숙제는 잘 하는지, 학교 수업 이해는 잘하는 지, 아이가 예의 없지는 않았는지. 마치 이번 통화를 기회로 체증을 씻어 내리려는 사람처럼 통화를 쉽사리 끝내지 않았다. 그녀는 어깨와 머리사이에 전화기를 낀 채로 가방을 정리하고 외투를 벗었다.

“네, 그럼요. 중간 중간 쪽지시험을 보면 안정적으로 나오는 편이죠.”

이 까다로운 엄마의 심기를 건드린 뒷감당이 두려워 계속 대꾸는 하지만 사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통화는 그렇게 10여분이 이어졌다.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 쯤, 그 엄마도 눈치가 있는지 ‘감사하다.’며 급히 말을 끝냈다.

여자는 신경질 적으로 TV를 켰다. ‘과외 3시간 보다 통화 30분이 더 힘들다.’고 우물우물 되뇐다. 이제 노을도 막바지라 주황빛은 점차 남색을 덧입어 갔다. 해가 지자 허망한 기분이 여자의 가슴에 스민다. 무엇을 위해서 저 늙은 여자 심기에 벌벌 기었을까. 저 여자가 뭐라고 나는 기분까지 상할까. 무릎을 끌어안은 여자는 구부정한 자세만큼이나 작아진다. 떠들어대는 TV앞에서 널브러져 버린다.

“하아-.”

공허한 숨은 길게도 빠져나온다.

이제 밤이다. 햇살은 더 이상 들이치지 않는다. 멍하니 누워있던 여자의 머릿속에 어젯밤 일이 스친다. 어제의 기억은 지금의 여자를 떨게 한다. 그 목소리조차 희미해지지 않았다. 바쁘고 밝은 낮 동안 까맣게 잊었던 두려움들이 스멀스멀 기어들었다. 뒷목이 뻣뻣하다. 두려움을 잊기 위해 시선을 TV에 고정한다. 끝없는 광고. 2, 3분에 목숨이라도 건 듯 쉼 없이 떠들어대는 멘트들. 그래도 사람소리 없는 집에 TV소리 나마 있는 게 낫다고 느끼는 그녀다. 몇 시간인지도 모르게 멍하니 TV를 보던 여자는 느릿하게 일어나 침실로 향한다. 찜찜한 감은 있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내일을 위해 지금 자야했다. 거실등과 TV가 꺼진다. 숨소리. 잠들면서도 어제의 일 때문에 걱정이 앞섰지만 피곤한 탓인지 여자는 금세 팔을 늘어뜨리고 잠에 빠졌다. 여자의 가슴이 보일 듯 말듯하게 오르내렸다. 그러나 얼마못가 또 경련이 일었다. 잠든 여자의 호흡이 점점 얕아진다.

“하, 하-”

호흡은 점차 짧아진다.

“나는 뜨거운 게 싫어.”

목소리, 여자가 버둥거린다. 조여드는 숨이라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다. 덜덜 떨리는 볼 위에 눈물이 흐른다. 그 목소리는 분명하게 그녀의 오른쪽 귀에서 울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애인지 노인인지 알 수 없는 울림이었다.

“나는 뜨거운 게 싫어.”

숨이 더 조여든다. 이 캄캄한 방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죽는 걸까. 갑자기 숨이 뚫렸다. 여자는 캑캑거린다. 숨을 웬만큼 찾자

“넌 뭐야!”

공포의 떨림이 묻어나는, 비명에 가까운 물음이었다. 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소리에 놀라 물러나길 바랐다.

“나는 뜨거운 게 싫어.”

목소리는 이제 오른쪽 귀에서 울리지 않았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쉼 없이 내질렀다.

“가버려! 가! 나를 내버려 둬, 제발 살려줘...”

히끅거리는 울음이 뒤따른다. 몸이 굳은 탓에 눈물은 눈에서 나와 그대로 흐르기만 했다.

“살아있는 것들은 뜨거워.”

목소리는 또렷하게도 자신의 문장을 전했다. 여자는 치가 떨리도록 몸을 덮어가는 공포에 몸서리쳤다. 도대체 누구야. 나한테 왜이래. 여자는 이제 애원하다시피 빌었다.

“제발, 날 놔줘. 날 살려줘, 살려줘...”

몇 분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여자의 울음의 여운만이 방안을 울릴 뿐, 목소리는 침묵했다. 여자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그 이상한 목소리가 무슨 말을 하든 떨지 않으리라고 수백 번을 되뇐다.

“나는 죽었어.”

성별도 나이도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말했다.

“나는 죽었어.”

목소리가 반복했다. 그 순간 여자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분노와 슬픔이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여자는 뜻 모를 감정에 휘둘려 오열을 토했다. 여자는 울면서도 자신이 왜 우는지 몰랐다. 눈물, 콧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어찌나 격하게 우는지 이마에 땀이 찼다.

“너에게서, 내 감정을 보고 싶어.”

아마도 목소리의 주인이 그녀의 마음을 뒤 흔들어 놓은 듯 했다. 곧 이어 휘몰아치는 감정은 온데 간데 없고 절망과 무력이 그녀 안에 들어찼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떠한 생각도 의지도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 여자는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휘둘렸다. 이제 제 자신도 살 가치가 없다는 듯 풀이 죽었다.

목소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여자도 눈을 감은 채 고요히 누워있었다. 두려움의 크기가 작아지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 보다는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곧 여자의 마음에서 이유모를 감정들이 사라져갔다. 여자는 긴 숨을 토했다. 감정이 일었다가 가라앉으면 의례 그렇듯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니가 싫어.”

여전히 감정없는 목소리였지만 조금 전과 다르게 단호했다.

“살아있는 것들이 싫어.”

목소리.

“내게 더 이상 기회는 없어.”

목소리.

여자는 목소리의 마지막 말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곱씹어 보았으나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순간, 여자는 자신이 목소리에 많이 적응했음을 느꼈다. 몸은 여전히 굳어있지만 두려움에 살이 떨리지는 않았다. 곧 은근한 푸른빛이 집안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새벽 빛이었다. 여자의 몸이 풀렸고 여자는 목소리가 떠났음을 알았다.

#3.

“비준안 통과에 대한 각 층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9시뉴스를 듣는 여자의 머리통이 웅웅 울린다. 밤 새 한 숨도 못자고 하루를 버티고 나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화면 속에는 서로의 넥타이, 셔츠, 양복저고리를 움켜쥐고 얼굴이 시뻘개져서 뭐라 떠들어대는 국회의원들이 보였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화면 속 그들은 우스웠다. 여자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누워버렸다. 하품이 연달아 세 번이나 나와서 그녀의 왼쪽 눈에 눈물이 흘렀다. 잘에 누우니 울리는 머리는 그런대로 얌전해졌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개나리가 서울 곳곳에서 그 빛을 뽐내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여기저기 흐드러진 노란 빛을 담아낸다. 여자가 잠들었다. 앵커의 목소리 사이사이로 그녀의 코고는 소리가 끼어든다. TV는 돌아가고 밤은 깊어가고 여자는 평온했다.

오전 8시 알람. 여자는 웅크렸던 몸을 펴며 일어난다. 잠자는 사이에 껐는지 TV는 조용했다. 목소리는 이제 떠난 것일까. 밤 열 시간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완전히 떠난 걸까, 그저 들르지 않은 걸까. 여자는 그 어느 쪽에도 확신을 둘 수 없었다. 여자는 가방을 짊어지고 현관문을 나설 때 까지도 의문을 놓을 수 없었다. 현관문이 조용히 열리고 집주인과 걱정이 나간다. 집은 다시금 굳는다.

검은 밤. 현관문이 시끄럽게 열린다. 여자는 현관문을 쿵 소리 나게 닫고 바로 엎어져버렸다. 나지막하게 낄낄거리는 소리가 거실에 퍼진다. 주황색 현관등이 곧 꺼진다. 여자는 이제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조소가 묻어났다. 한밤중을 지나고 있는 거실은 그저 컴컴하게 여자를 품고 있다. 웃음소리는 꺽꺽거리다가 흐느낌으로 넘어갔다. 여자는 엎어진 채로 뱃속에서부터 울려나오는 울음을 내뱉었다. 몇 분간 어둠 속에는 여자의 울음이 채워졌다.

“하아-.”

울음은 잦아들고 여자의 긴 숨이 뒤를 이었다. 엎드려있던 여자는 가방을 벗어내고 바로 누웠다. 발을 휘둘로 신발을 벗어던진다. 큰 숨이 들락거려 여자의 가슴이 오르내렸다.

“한-심해.”

여자는 지금 어떤 이유에서인지 술을 마신 자신이, 술을 마신 채 울고 우는 자신이 한심했다. 무엇을 위해서 멍청하게 살아온 것인지 지금 당장 고꾸라져 죽어도 과연 몇이나 날 위해 울어줄 것인지-잡다한 생각들이 머리통을 휘젓고 다녔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 쯤 에는 웃음이 그 틈을 참지 못한 채 삐져나왔고 그 웃음은 흐르고 흘러서 눈물을 뽑아낸다. 생각을 내보내려는 듯 긴 숨을 뱉어내는 여자의 가슴이 오르내린다.

침묵. 여자의 코고는 소리가 울린다. 술기운에 널브러진 채 잠든 여자. 곧 몸이 점차 굳어간다. 여자는 진절머리를 내며 버둥댄다. 술기운에 겁도 두려움도 없어진 여자가 발악한다.

“꺼져! 죽었으면 죽은 놈 답게 해야 될 거 아냐!”

곧 숨이 조여든다. 여자는 요란하게 컥컥대다가 또 버럭 소리친다.

“죽여! 그래, 죽여!”

숨통이 트인다.

“죽여-! 죽여! 날 죽여...”

얼굴이 벌게지도록 성깔을 부리던 여자는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어쩐지 목소리는 반응이 없었다. 소리를 질러대는 여자에게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목구멍에는 울음이 꽉 차 조금씩 새어나왔다. 몇 분이 지나 여자가 웬만큼 잠잠해지자

“살아야 해.”

목소리가 말했다. 여전히 감정 없는 건조한 투였다.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비웃었다.

“내 목을 조른 건 너야.”

목소리는 다시 잠잠했다. 여자는 드러누워 짜증 섞인 투로 몇 마디를 내뱉었다.

“니 맘대로 왔다갔다하지 마. 피 말리니까.”

“내게 더 이상 기회는 없어.”

지난밤과 같은 말. 여자가 물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야?”

“너에게는 기회가 있어.”

살아있다는 게 기회라는 건가. 도대체 뭘 위한?

“너에게는 선택할 기회가 있어.”

“넌 뭐야?”

목소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자가 다짜고짜 물었다. 여자는 진정으로 궁금했다. 자신이 미쳐서 듣는 환청이든 진짜 누군가의 목소리이든 그 실체가 궁금했다.

“나는 죽었어.”

지난밤에 했던 말의 반복. 그러나 목소리는 여자의 감정을 헤집지는 않았다. 그저 말했다. 그것이 전부인 양. 술기운에 달아올라 전과 다른 용기가 생긴 여자가 따지듯 되묻는다.

“뭐?”

여자는 그 목소리가 지난밤의 반복이 아닌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다.

[현재까지 쓴 부분 끝]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단하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