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조카가 달랑 둘이다. 그나마 시댁쪽으론 둘이고 외가쪽으론 달랑 한명...그도 아직 두살인가...
손이 귀한게 아니라 때가 되어 한참을 지나도 안 가는거다.큰사촌오빠도 울 아가씨도 울 언니도
그리고 이젠 내 동생도, 사촌도 다들 독신이다. 즐기는지, 못가는건지....

추석을 맞아 우리 큰 조카와 정말 몇년만에 긴 대화를 나누었다.
어릴때는 내가 목욕도 시키고 유치원발표회에 형님대신 가기도 하고 초등때는 영화관이나
놀이동산에 가끔씩 데리고 갔는데 이젠 사내티가 날정도로 많이 크고 바쁜 고1...
경기도 수지에 사는 조카는 작년 외고에 실패하고 일반고에 갔다.
경기도는 평준화가 아니라서 성적대로  간게다.
묻기도 뭐하고 그냥 성적이야긴 형님이 안 하시니까 그저 잘 하고 있으려니...했다.
외고도 가능성있으니 노려보는 거겠지하며 응원도 하고 책도 몇권 구해 외국에서 보내기도 했는데...

이 녀석...말하는동안 뭔가 자신감이 많이 없는걸 느꼈다. 수학이 힘들다는 조카는 1등급맞는 애들은
따로 있다며 자기는 그런 실력은 없다고 대놓고 말하고 영어도 어느수준이상은 자신없다하고
진짜 실력있는 애들은 따로 있다고 말하는 폼이 벌써 패배감을 몇번 맛봐서 자기자신에 대한
확신과 도전정신이 없는듯이 들렸다.
아직 고1인데 내가 알던 까불이 조카는 간데없고 어느새 철이 너무 들어버려서 세상물정에 빤한
어른같은 조카가 내 앞에 있던게다.

후회도 하더라....
형님이 바빠서 아이들 못챙기고 언제나 가면 책만 읽고 놀길래 그도 나름 멋지고 좋아보였는데...
영어단어를 중학때 더 많이 못 챙긴거와 수학 심화를 더 익히지 못한것을 힘들어 한다.
가고싶은 대학은 연대 경영인데 힘들거 같다며 벌써 지레 포기조로 이야기를 하는게 너무
쇼크였다. 참 좋은 녀석인데....
 
내가 대학에 있을때 울 대학에 데리고 간적이 있는데 그때 서울대와 연대도 구경시켜주었더니
그중 연대가 맘에 들었다는 아이..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이 아인 거기가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냥 해보다가 되는데 가야죠...하는거다.
중간부터 대화에 합류한 울 형님은 놀라신 눈치고....
아마 서로 바빠 믿고 있다가 이런 이야긴 나누지 않았나 보다.
부모 자식간에도 서로 민감한 이야긴 맘먹지않으면 하기 힘든데 형님은 좀 때를 놓치신듯하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울 나라에서 가장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을 고르자면
단연 외모와 성적이라고 생각된다.
정말 싫은 현실이지만, 비교하기 좋아하고 등급매기기좋아하는 울 국민들이 스스로들
그런 함정을 파놓고 서로 힘들어하는게 아닌가 싶다.
수학 3등급이라는 조카는 자기도 마치 3등급인간인것 같다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방으로
시험공부를 하러 들어갔다.
딱히 하고싶은일도 없고 별다른 꿈도 없고 남이하는대로 비슷하게 열심히 하기도 한 조카가
성적은 그냥 대중적인 수준이니 나도 참 해줄말이 없었다.
힘내!!넌 할수있어!!라고 말하기엔 조카는 너무 커버린것 같다.

돌아오는길에 멋지고 속편하지만  똑똑한 조카를 너무 방치하신 울 형님에게 조끔
화가 났다. 쫌만 신경 더 써주었더라면 참 잘했을 아이를...이란 생각이 주제넘게 자꾸 드는거다.
컴퓨터 제한시간도 없고 밤새고 영화를 봐도 뭐라하지않는 울 형님댁....

자연주의 교육의 현실을 보는것같아 속이 불편하면서 그러나 너무 공부만 시키는 부모도 문제있는거
같고....이도 저도 아닌 내 본심이 대체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울 대학에는 완도에서 독학으로 공부했지만 장학금받아 들어온 아이도 있고 강남에서 과목당
80만원 과외받고 공부하다 들어온 아이도 있었다.
두번째 아이집안이 재력이 월등한건 말할 나위도 없지만 두 아이 부모님들의 공통점은
모두 무척 많은 관심을 아이에게 갖고 지켜보셨다는 것이다.


담에 만날때는 울 조카가 좀더 밝은 얼굴로 기운차게 자기에 대해 말할수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자꾸만 울 조카를 소극적으로 만드는 주변환경들이 좀더 정화되는 사회가 하루빨리
되기를....
첼로를 잘 켜시고 학부모 모임 대표였던 아만다 아빠가 불현듯 떠오른다.언제나 자신에 차있으시던
멋진 아버님...
그의 직업은 목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