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자동차를 구입했습니다. 저는 교통법규를 알고 있는 범위에서는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부서 회식이 있어서 새벽 3시에 집에 올 때에 불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시골길 신호등에서도 꼬박 파란불을 기다렸으며 차선이 끊겨 있지 않는 곳(터널 내, 다리 등)에서는 차선 변경을 절대 하지 않았고, 정지선을 반드시 지켰으며(이경규를 만났어야 하는건데..) 교차로가 나오면 통과하려고 가속하지 않고 정지 신호로 변경될 것을 염두에 두고 대비했습니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정지하고 기다렸고, 골목길에서 길을 막고 걷는 사람이 있으면 비키라고 경음기를 울리지 않고 살살 뒤 따라 갔으며, 텅빈 고속도로에서도 제한 속도를 철저하게 준수했습니다. 자동차키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술을 절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결국 차를 갖고 출근한 날은 술을 마시지 않게 되다보니 완전금주를 하게 되었음). 주변에서는 좀 지나치다는 반응이었지만 계속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갈 때에는 교통법규 준수에 대한 생각과 아빠가 지키고 있는 것들을 얘기해 주고, 작은 것을 지키지 않고 허용하다 보면 큰 것도 지키지 않게 되어 결국에는 큰 잘못이 일어나게 된다. 작은 것을 지켜야 질서가 유지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얘기를 해 주곤 했습니다.

 

학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몸이 아파도 학교는 반드시 가도록 했습니다. 초등 2학년 때 아이만 혼자 남겨두고 저희 부부는 시골에 제사지내러 가서 다음날 돌아 온 적도 있었습니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 12년 동안 아이 할아버지 장례기간을 빼고는 하루도 결석이나 조퇴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아이가 “가훈”이 뭐냐고 묻기에 “성실”이라고 말하고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성실이란, 첫째 자기의 시간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다. 너의 오늘 한 시간은 너의 인생의 다른 시간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소중한 것이다. 이 시간이 최선의 것으로 채워져야 네 인생 전체가 가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 너의 수업 한 시간, 네 친구와 보낸 한 시간은 모두 소중한 너의 삶이므로 최고의 가치여야 한다. 네가 어떤 여자애사귀다가 싸우고 헤어졌다 해도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은 네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었으므로 그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한 그 친구는 영원히 소중한 사람이다. 결코 나쁜 기억으로 남겨져서는 안 되며 나쁜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자기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다. 선택은 돈과 소중한 삶 자체인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게 되며, 그 결과는 네 인생을 모든 것을 좌우할 수도 있다. 선택을 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저는 상대적인 가치관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해 주려고 했습니다. 선입관은 양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유리항아리 같은 것이어서, 어떤 가치에 대하여 제약을 갖고 있다면 아이의 성장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 윗 사람에 대한 예의, 약속에 대한 책임 등은 절대적 영역에 두고 대부분의 것들은 아이가 스스로 형성해 가기를 바랐습니다.

책은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을 것을 권했고, 아이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따로 억제하지 않았습니다. 좋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려면 반대쪽도 함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서가에는 제가 공부를 하느라 보는 책과 일본 여행 시 사온 잡지(우리나라에서는 지금 기준으로도 18금 내용들입이다.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슈퍼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보고 있던 것입니다만)가 나란히 꽂혀 있었고, 일반 비디오테잎과 세운상가에서 사온 빨간 내용 테잎도 같이 꽂혀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한 조치라고는 “이것이것은 아빠것이니 손대거나 보면 안 돼”라는 말을 한 것뿐이었습니다. 스스로 유혹을 이기거나 절제하거나 순응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간 아이를 기른 결과 아이를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점도 작용했습니다.

 

1995년 ms dos가 역사의 뒷길로 사라지고 오늘날과 같은 컴퓨터 사용환경인 windows95가 출현하자 온나라 왠만한 집은 pc를 아이들에게 한 대씩 사주었습니다. 아이들은 pc를 게임기로 이용하였고 인터넷 상에 음란물이 범람하기 시작하였으나 아이들과의 접촉을 차단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큰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저는 하지 못하게 하여 몰래 하게 하거나 죄의식을 갖고 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 스스로 자기를 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이와 함께 사용하는 컴퓨터에 전혀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은 어디든 접속이 가능했고, 게임 폴더에는 동급생(일본 엘프사의 학원물 야게임)이 아이가 즐겨하는 삼국지나 대항해시대와 함께 있었습니다.

컴퓨터에 대해서도 제가 아이에게 한 조치라고는 “이것 이것은 아빠것이니 손대거나 보면 안 돼”라는 말을 한 것뿐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도 아이의 이성교제에 대하여 제한을 가하지 않았고 아이가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오면 정말 반갑게 맞아 주었으며 여자친구들이 자꾸 바뀌어도 마치 늘 한사람인 것처럼 내색하지 않고 한결같이 대했습니다. 모두가 귀중한 삶의 시간을 함께 한 친구이니 헤어진 후에도 그 추억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얘기해 주곤 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순수하기를 바랐습니다. 제 나름대로 정립한 순수에 대한 개념은 이렇습니다. “순수란 가을 호수의 물빛 같은 것이다. 가을 호수는 파란 하늘이 비치면 파랗게 물들고, 하늘에 구름이 흐르면 호수에도 구름이 흐르고, 산에 빨갛게 단풍이 들면 물에 비친 산에도 빨갛게 단풍이 든다. 물빛은 어느 빛으로도 변하지만 어느 빛으로 물들지도 않는다. 순수란 모든 것을 받아들이되 받아들인 어떤 것으로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은 나쁜 것이다. 그 것은 더러운 것이다’는 식으로 가치관이 굳어져 있다면 이미 순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되 어느 한 가지만으로 채워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인간성을 존중한다’는 말에서 인간성이란 다른 동물과는 다른 인간만의 특성 즉, “생각하는 능력”을 존중한다는 말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사회성은 원숭이들도 갖고 있으며 금수보다 못한 인간들이라는 말이 있으니 도덕성 등도 인간만의 특성이 아닙니다). “ 인간성을 무시한다는 말은 생각하는 능력을 있음을 무시한다는 말이다. 즉, ‘이 돌대가리야’라던가 ‘너는 하라는 대로만 해’라고 하는 말이야 말로 인간성을 무시하는 말이다. 또, 잘못을 계속하면서도 원인을 찾아 개선하려 하지 않고, 좋지 않은 상황을 방치하는 것 또한 인간성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 만약에 네가 네 친구에게 ‘야 이것 엄청 귀한 것이니 소중이 다뤄 줘’ 하고서는 너는 그 것을 발로 툭툭 차고 다닌다면 친구가 그 것을 소중하게 다뤄줄까? 남이 존중하게 하려면 너부터 그 것을 존중해야하는 거지, 내가 존중하지 않는 것을 남이 존중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지.

생각하는 인간이 되자. 인간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사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이성’이란 생각하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야. 생각하지 않고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면 스스로의 인간성을 무시하는 행위야” 이런 얘기들을 종종 해 주었습니다.

(고등학교 일학년이 끝나 갈 때 인터넷에서 아이의 학급 카페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는데 ‘평생에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을 것 같은 친구’에 아이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주 순둥이였나 하시겠지만, 초등 6학년 때는 가장 주먹이 세게 생긴 친구로 인정되기도 했고, 고등학교에서는 학기마다 새로 뽑는 반장에 계속 뽑혀 3년 동안 반장을 했습니다)

 

tqc 기본이념의 첫 번째인 인간성 존중은 문제의식과 개선의식을 갖고 생각하는 능력을 발휘하여 좋음 달성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가 스스로의 인간성을 최대한 발휘하기를 원했습니다.

부모가 원하는 것에 대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하여 순응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품성을 갖춘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습니다. 말하기 이전에 깨달아 알고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