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남편과 아들이 서로간에 상성이 별로 좋지 않다...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다시 보니 찰떡궁합이 따로 없네요.

남편의 솜털보다 가벼운 공약(?)과 아들의 가벼운 약속이 이렇게 닮을수가.

저하고 틱택거릴땐 시종일관 냉철한 태도를 유지하며 속을 긁는 남편은 아들한정 양은냄비성질이네요.

앞뒤 재지않고 화르륵 ~

무조건 덮어놓고 화르륵~

그리고 어마어마한 벌칙을 선고하지요.

앞으로 게임시간은 영원히 없다!

자유시간도 1분도 없다!

독서는 교과서 문제집 외에 꿈도 꾸지마라! 등등 기타 등등등~~~

1차 선고를 내린지 몇분 안되어 아들 뒤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했던 말 또 하고 또하고 또하고 무한 반복이에요. 옆에서 듣는 제가 스트레스 받을 지경이랍니다.

둘다 저 멀리 휙휙 집어던져버리고 싶어요.

그리고 일단(?) 말을 꺼냈으면 최소한 한달이라도 지켜야지 아들놈이 어머 뜨거워라 하고 정신을 차릴텐데, 길면 이틀 짧으면 하루쯤 지나고 또는 심할땐 몇시간 지나고 자기가 뱉었던 말을 다시 철회합니다.

너 또 그러면 정말 국물도 없다 응? 이번만 아빠가 봐주는거야.

그럼 아들이 앞으론 안그럴께요. 하면서 둘 사이엔 평화가 찾아오고 두어달 지나면 아들이 또 저지르고

남편은 또 화르륵 해서 벌칙때리고 금방 철회하고..

이사람들이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저번주 월요일에도 아들이 절대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고 또 저질러 남편이 엄청 화를 내었어요.

이번에야말로 뭔가 되나보다(?) 했는데요.

이틀뒤 새해첫날 우리 아들은 하루종일 펑펑 놀았답니다.

남편이 고등학생되면 그럴 시간도 없을테니 또 남은 방학 열심히 공부해야 하니 1일 하루만 실컷 놀라고

그날은 하루종일 게임만 해도 잔소리 않을테니 니 맘껏 놀아라 해서..

새해첫날 열공으로 첫테이프를 끊은 많은 학생들이 있을 터이지만 우리 아들은 거리가 영영~

그날 아침 8시에 일어난 아들 시계를 보더니 놀라면서, "어!! 8시다!! 아~ 아까워라 새벽에 일어나서 놀려고 했는데 시간이 벌써 다 갔네" 하면서 밥도 먹기 전에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하더라구요.

아빠의 공식적 승인이 있어 아주 대놓고 사운드도 빵빵하게 틀어놓고...

그래도 설마하니 하루종일 하겠어? 했던 마음을 배신하고 정말 자기 직전까지 화장실-식사-게임만 반복했어요.-_-

제가 해도 너무한다고 한마디 했더니 아빠와 아들이 입을 모아 같은 소리를 하네요.

아빠 : 앞으로 이런시간 다시 없으니까 오늘은 그냥 놔둬봐.

아들 : 제 인생에서 하루를 다 버리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제가 알아서 할께요.

그리고 그 다음날 자기 방에서 대청소를 하더군요.

돼지우리 못지 않은 지저분한 공간이 놀랄정도로 스마트해졌어요.

용돈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대청소를 한건 처음인것 같아요.

저번주 전혀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편과 아들이 모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스홀에 글 올리는 것을 만류하셔서 실명은 밝히지 않겠어요)

그간 우리가 수십차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피력했으나 아들은 늘 별 의미없이 받아들였고 허구헌날 우리나라 교육제도만 탓하면서 자기자신이 게으름 부리는것에 대한 합리화를 해 왔거든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나가서 새벽 한시가 다되어 들어왔는데 아들 눈에 생기가 흐르더라구요.

진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캬...정말 대단하지요. 부모가 몇년간 해도 이루지 못한 것을 세시간만에 아들놈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주시다니..

거기다가 그 시간이 서먹살벌했던 부자간에도 뭔가 교감이 이루어지게 했나봅니다.

전에는 아빠고 아들이니까 마지못해서 그냥저냥 지나왔다면 요즘 며칠은 둘이서 소꿉장난 하는것 같아요. 둘이서 눈웃음 치면서 씩 웃기도 하고  ..

전에는 아들방이란 장소는 아빠가 잔소리 하려고 들어가는 곳이었는데 요즘은 둘이 콕 박혀서 도란도락 이야기 하는 소리도 들리고 초큼 닭살이에요.

본의 아니게 아빠를 독차지하다시피 하던 딸램이 왕따 당하는 분위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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