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29년 동안 서있으면서
제가 가장 어렵게 쓰는 말이 제자라는 단어입니다.
제 나름대로 정성을 쏟아, 저로 인해 좋은 쪽으로 변한 학생에게만 편하게 제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자라고 부르는 학생은 몇이 안됩니다. 사실 1년에 서너 명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김연아는 한국사를 새로이 쓴 사람입니다.
내년에 개편될 한국사 교과서에 김연아 사진이 대문짝 만게 나올 것입니다.
단군이래 김연아처럼 전세계를 움직인 한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김연아와 오서코치 사이 문제가 요즘 화제입니다.
코치는 '지도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생이나 별반 다를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서 코치는 우리가 말하는 선생님하고는 다른 기분이 듭니다.
동계올림픽,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지도한 것은 참으로 고맙지만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한 시간에 얼마를 받았다는 것을 밝힌 것은 그냥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프로그램을 폭로한 것부터 이해하기 힘드네요.
선생님이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사이 고 3 담임 선생님들은 추천서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사정관 전형이 확대되면서 이대학 저대학에서 추천서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고3담임할 때, 어떤 한 학생에게 추천서를 네장이나 써 줬습니다.
이런 학생이 반에서 너댓명 되면 몇 일은 밤을 새야 합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임금, 선생님, 아버지는 같다는 말이지요. 많은 선생님들은 이말을 공감합니다. 
학교에서 반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가장 먼저 책임지는 사람은 담임입니다.
절차상에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담임이 잘못 지도했다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심한 경우는 경위서도 쓰고, 교장이나 동료교사들로 부터 나쁜 평가를 받습니다.

몇년 전 우리 학급 어떤 학생이었습니다.
가끔 지각하고, 중간에 사라질 때도 있고....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여 교과 선생님께 자주 지도 받고,
주번활동을 게을리 하여 환경담당 선생님께 꾸중도 듣고,
자습시간에 학습 분위기를 흐려 반 친구들도 그리 좋아하지 않던 학생입니다.
저 한테도 꾸중을 많이 들었고...몇 번인가 반항을 하여 심하게 혼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부는 잘하여 반에서 5등 정도 했습니다.

이 학생이 어떤 대학에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더군요.  
그 동안의 학생의 잘못된 행실을 설명하면서 추천서를 써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울면서 몇 일 동안 부탁을 하더군요.
앞으로 성실히 학교 생활을 하겠다는 각서를 쓰면 써주는 것을 고민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써주게 되었는데, 당시 추천서에는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결론적으로  귀하는 위의 학생을 본 대학교에  
(1) 강력히 추천합니다.
(2) 보통으로 추천합니다.
(3) 추천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코치였다면 즉, '지도하고 기술만 가르치는 사람'이었다면  (3)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이었고,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통하는 우리나라 선생이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선생이 잘못가르쳤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 생각 때문에 (3)번만큼은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이 지금 벌어진다고 해도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담임 선생님이 나에 대하여, 우리 자녀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계신데
혹시 추천서에 불리한 말을 쓰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계시다면 
"걱정하지 마시라!"고 비오는 날 새벽에 글을 남겨봅니다.
대한민국 선생님들은 오서 코치하고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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