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8살 손탄스키. 둘째아이라서 마냥 애기처럼 보였는데 벌써 초등학생이 된다니 참 대견해요.
그런데 손탄스키 때문에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어요. 입학 전 검사로 안과를 다녀왔는데 양쪽 모두 시력이 0.1 이래요. 안경을 써도 0.7 이상은 어렵고요. 이 정도면 엄청 불편했을텐데 아이가 이야기 안했냐고 묻네요. 병원에서 저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요.
그 소리 듣고 머리가 어찌나 멍하던지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이제까지 눈이 나쁠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아이도 안 보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별로 없고요.
가끔 만화 보여줄 때 TV 앞에서 보기에 뒤로 가라고 하면 안 보인다고 할 때가 있었을 뿐이지요. 하지만 그걸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그저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거짓말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더 혼냈고요.
그런데 진짜 안 보였던 거에요. 0.1이면 세상이 온통 뿌연 수준이니까요. 지금은 수술해서 시력이 좋아졌지만 예전에 제 시력이 0.1이었거든요. 그래서 0.1이 얼마나 안 불편한지 너무 잘 알지요.
도대체 얘는 안 보인다는 이야기를 왜 안했을까요? 진작 이야기했으면 치료를 받던지 안경을 쓰던지 뭐라도 더 빨리 해줬을 텐데요. 애가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눈치채지 못한 제 자신도 한심하고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얘는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나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애초부터 온통 뿌연 세상이었던거죠. 그래서 그게 당연한 줄 알았을거에요. 또렷하게 보인다는게 무슨 의미인지조차 몰랐겠죠.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안 보인다는 이야기를 안 하니 저는 물론이고 친척들이나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도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거죠. 눈을 찡그리고 본 적도 없거든요. 그렇게 하면 더 잘보인다는 사실도 몰랐나봐요.
그런 것도 모르고 아이를 참 많이 혼냈어요. 바늘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주고 벽시계 시간을 물어보면 탁상시계(전자시계) 앞으로 달려간다고 혼냈거든요.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지 왜 안 보인다고 거짓말 하냐면서요. 설마 눈이 나쁠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차 안에서도 바깥 풍경 구경하라며 ‘저 앞에 멋진 건물 보이니?’라고 물었고요. 그 때마다 금방 찾아내는 큰애와 달리 ‘어디요?’를 외치다 그냥 지나치는 작은애를 눈썰미 없는 애라고 생각했지요.
축구교실에 보냈을 때도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할 뿐 헛발질만 하는 아이를 운동신경 꽝이라고 생각했고요.
생각해보니 아이가 몸으로 알려준 적이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그걸 눈치채지 못했던거에요. 정말 등신같은 아빠입니다. 그걸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요.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미치겠어요. T_T
스터디홀릭 운영비 마련해야 된다며 한겨울에 난방도 하지 않고, 식재료도 11시 넘어 마감세일만 사러다니던 저에게 친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강 선생, 남의 애들만 챙기지 말고 강 선생 애들부터 챙겨. 안 그러면 나처럼 후회해.
그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그 말이 가슴에 사무치네요. 혹시, 아이를 너무 안좋은 환경에서 키워 눈이 나빠진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만약, 그런거라면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거에요.
그런 생각에 화장실에 들어가 물 틀어놓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이렇게 슬프게 울은게 얼마만인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내가 이러려고 남들 돕고 살았나,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기에 나는 귀 한쪽이 안 들리고(2년 전에 돌발성난청이 와서 귀 한 쪽이 거의 안들리게 됐습니다. 그 때도 정말 많이 울었죠.), 내 아들은 눈이 잘 안 보이게 된걸까라고요.
좋은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더군요. 취직하거나 학원을 차리면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애써 마음 추스리고 나왔는데 머리가 온통 복잡합니다. 그래서 새벽까지 아이 눈을 좋게해줄 방법이 없을까 검색하는데 아이가 목 마르다며 잠에서 깼어요. 그러고는 자기랑 같이 자자고 떼를 쓰네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아이 옆에 누워 이렇게 말했어요.
‘그동안 불편했지? 내일 아빠가 멋진 안경 사줄께. 같이 안경 사러가자!’
그러자 아이가 졸린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네요.
‘안경 안사도 되요. 당근 열심히 먹고 눈 깜빡이면 좋아져요’
아... 그 소리에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아이에게 들킬까봐 화장실에 뛰어가 한참 울었네요. 아이가 화장실 앞에 와서 왜 안나오냐고 묻는데 목이 메여 대답을 못했어요. 멋있는 걸로 사달라, 2개 사달라 뭐 그런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그 와중에도 아빠 생각해서 안 사줘도 된다고 이야기했으니까요. 그동안 애한테 돈 없다 타령을 너무 많이 했나 봐요. 이번에 초등학교 입학하는데도 가방을 새로 사주지 않고 스홀 가족한테 얻은 쓰던 가방을 메라고 했거든요. 매번 형한테 물려받기만 해서(형 물건도 대부분 친척이나 스홀 가족한테 얻어온 것들) 헌 물건이라도 자기 것이 생기면 뭐든 좋아하는 아이라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거죠.
그러고 보니 둘째는 새것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군요. 속옷이나 양말도 형이 입던 것을 입고 있고, 지금 입고 있는 잠옷도 형이 입다 무릎이 터진 걸 그냥 입고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불평한 적이 별로 없어요. 형이 부럽다면서도 나중에 자기가 물려받을거라 괜찮다고 이야기하던 아이거든요. 그 착한 마음을 아빠가 이용하고 있었던거죠.
밖에서는 존경받는 교육자, 아빠가 교육전문가니 그 집 애들은 정말 좋겠다며 부러움을 받고 있는데 실체는 자기 애 하나 똑바로 보살피지 못하는 허영 덩어리였습니다. 아니, 자기만족에 빠져 가족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가장이었지요.
많은 분들께서 제가 스터디홀릭을 통해 많은 돈을 번다고 생각하시더군요. 그래서 자기 한 명 정도는 무료로 상담해줘도 되지 않냐고 당당히 요구하시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터디홀릭은 저희 가족들을 희생시켜가며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입니다. 스터디홀릭으로 돈을 버는게 아니라 10년 이상 스터디홀릭에 돈을 털어넣고 있지요.
아빠 잘못 만나서 고생만 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지네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머리가 복잡합니다.
그나저나 저희 애는 이제까지 엄마, 아빠 얼굴을 또렷하게 본 적이 한 번도 없겠죠? 그 생각을 하니 지금도 눈물나네요. 미련한 아빠, 무책임한 아빠, 그렇게 낳아준 아빠여서 너무 미안합니다. T_T
추신.
이 와중에도 일 해야 된다며 스홀맘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덧글에 웃는 이모티콘까지 달아가며 답글 다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보이네요. 내가 진짜 뭐하고 있는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