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고등학교 유형이 상당히 단촐했습니다. 인문계고냐 실업계고냐라는 식으로 매우 간단했잖아요. 그래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도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성적을 기준으로 인문계고를 갈 학생과 실업계고를 갈 학생이 자연스럽게 나눠졌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실업계고는 공부를 못해서 인문계고에 못가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라는 인식이 많았습니다. 성공하려면 대학을 가야한다는 인식도 강했다 보니 인문계고의 인기는 높아지고 실업계고의 인기가 낮아져서 실업계고 비율도 줄어들었고요.

(물론, 공부를 잘 함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 등 개인적인 사정으로 실업계고에 진학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서울여상 등 왠만한 인문계고보다 훨씬 뛰어난 실업계고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대학을 꼭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도 많이 퍼졌고,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인문계고에 진학하기가 매우 수월해졌지요. 예전에는 인문계고 정원보다 인문계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실업계고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요즘은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서 공부 못한다고 인문계고에 못가는 상황은 거의 사라졌으니까요. 그래서 예전에는 대학에 진학할 생각도 없고 공부에 관심도 없는 최하위권 학생들이 실업계고에 진학했지만, 이제는 일반고에 진학하고 있지요.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불합격해서 어쩔 수 없이 일반고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고요.

설마 특성화고에 불합격해서 일반고에 오는 학생들이 있겠어? 있어봤자 극히 드문 케이스인데 그걸 너무 부풀리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매년 1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특성화고에 불합격해서 일반고로 진학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특성화고에 탈락하고 일반고에 진학한 학생수가 전국적으로 18,983명이나 되어 정부에서 2013년 10월에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일반고의 진로직업교육 확대를 공표하기까지 했을 정도지요. 일반고 학생이 특성화고로 전입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일반고에서도 직업교육을 강화하기로 한 것입니다.

(일반고에서의 직업교육 정책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일반고 몰락과 관련하여 특목고와 자사고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우수한 학생들을 먼저 선점해가서 일반고가 몰락하고 있으니 우수한 학생들이 일반고에 진학할 수밖에 없도록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특목고, 자사고, 자공고가 최상위권 학생들을 선점함으로써 일반고 몰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반고 몰락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특목고, 자사고가 아니라 대학진학에 뜻이 없는 학생들까지도 일반고에 진학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진학에 뜻이 없는 학생들은 특성화고로 빼줘야 하는데 특성화고 정원이 부족하다 보니 대학진학에 뜻이 없는 학생들까지 일반고에 진학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 보니 수업분위기는 안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실에서 공부 잘 하는 학생이 한 명 사라지는 것보다 공부 안 하는 학생이 한 명 늘어나는 것이 학업분위기 훼손에 더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교실에 수업분위기 망치는 학생이 딱 한 명만 있어도 교실분위기가 난장판이 되어버리잖아요.

따라서 일반고에 진학할 경우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특목고나 자사고로 많이 빠져나갔다는 것 뿐 아니라, 애초부터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는 학생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도 줄어들었지만,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학생도 늘었기 때문에 일반고에서는 자기 관리가 예전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지요. 친구들에게 휩쓸리지 않도록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주변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성격이라면 학교 선택 시 매우 신중히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디서든 자기 하기 나름이고, 예전에도 공부 안 하는 애들은 어디에나 있었다고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예전보다 훨씬 심각해졌거든요.

그리고 현재 일반고에 재학 중이라면 성적 관리는 물론이고 학생부 관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안타깝게도 학생부 관리는 부모의 관심만큼 분량이 늘어나거든요. 부모님이 교내대회 수상실적까지 만들어주실 수는 없지만 봉사활동이나 체험활동, 독서활동은 물론이고 선생님들이 기록해주시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종합의견 내용을 요령껏 늘려주실 수 있으니까요. 안타깝지만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취급 당하는 것이 학교의 현실입니다. 학교에서 알아서 관리해주거나, 대학에서 우리 아이의 잠재력을 파악해줄거라고 기대하지 말아주세요. 학교나 대학은 그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거든요. 그렇게 안해도 자신들에게 아쉬울 것이 전혀 없으니까요.

아울러 1학기 학생부 기록사항은 학교에서 주로 8월에 작성합니다. 따라서 개학 전에 학생부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지 미리 구상해두셨다가 개학 후 학교 선생님께 기록을 요청해보시기 바랍니다. 방학 때 한 봉사활동이나 독서활동도 학생부에 기록할 수 있거든요. 참고로 우리 아이 학생부 기록내용은 나이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니 8월 중순 이후에 나이스 홈페이지에 접속하셔서 기록여부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학교에 따라서 나이스 공개를 막아놓은 곳들도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담임선생님께 정중히 공개를 요청해보시기 바랍니다. 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내용을 수정해달라는 민원이 발생하는 것이 싫어서 학생부 공개를 절대 거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그럴 때는 행정실 선생님께 부탁하시면 됩니다. 행정실 선생님이 학생부 내용을 수정해주실 수는 없지만 학생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실 수는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실 선생님과 미리 안면을 익혀놓는 것이 좋겠지요.

추신 1.

스홀맘 : 선생님께서 학생부 내용 수정이나 추가를 거부하실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캉쌤 : 안타깝지만 선생님께서 완강히 거부할 경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습니다. 선생님과 한바탕 신경전을 벌여서 수정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럴 경우 다른 식으로 보복(수행점수나 다른 항목에 안 좋은 평가 기재 등)을 당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께 학생부 관련 요청을 하실 때는 선생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공손하게 부탁(!)하시고, 선생님이 끝까지 거부하실 경우 답답하시더라도 그냥 넘어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부 관리에 있어서는 선생님이 절대적인 갑이거든요.

앞으로 수능 및 고교내신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학생부 기록 권한을 갖고 있는 학교 선생님들은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슈퍼 울트라 초 갑갑갑이 될 겁니다. 선생님의 평가 한 줄이 우리 아이의 합격과 불합격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으니까요.

추신 2.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 중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자기 할일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께서 그런 아이들이 특목고에 가야 된다고 생각하시지요. 그런데 캉쌤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공부 밖에 모르는 사회성 부족한 아이가 오히려 일반고에 더 적합합니다. 그래야 친구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낼 수 있거든요.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아이일수록 학업분위기가 좋은 학교에 보내보세요. 그곳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겠지만 노는 방식이나 장소가 달라질 겁니다.

추신 3. 체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체벌이 사라진 이후 일반고의 수업분위기는 더 엉망이 되었습니다. 체벌이 있을 때는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심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체벌이 금지되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황이거요. 잘못하는 학생들에게 벌점을 주거나 학생부에 기록해서 불이익을 줄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나 무서운 제재일 뿐 대학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제재가 되지 않지요. 오히려 벌점과 학생부 기록을 자랑처럼 떠벌리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우리 아이는 부모인 내가 직접 관리하고 지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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