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마주오는 머리 파마한 청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눈인사를 건넵니다. 누구지? 기억이 안나는데 어디서 보던 얼굴이라서 아는척 인사를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니 그 학생의 이름이 생각납니다. 아!  고1 첫 중간고사를 보고 자퇴했다더니....

제가 하는 일중에 상담도 많은 부분이어서 그런지 주위에 학업을 중단하거나 포기해 버리는 학생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학업을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거나 오히려 축하해 주어야할 일이겠지만, 대부분 그들은 그런 대안을 찾을 용기(?)도 내지 못하고 자포자기상태로 빠져 일상을 헛되게 보내고 있으니 더 안타깝습니다.

초,중학교 시절에는 자의던 타의던 간에 공부보다는 사교나 오락, 가족의 화목(?)에 치중하다가 막상 고등학생이 된다고 하니 슬며시 겁도 나기도 하고, 입시를 생각하면 이렇게 하면 안될 것 같기에 나름 굳은 결심을 하고 열공에 도전하던 지난 겨울의 그 많은 중3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도전을 마치고 맙니다. 알에서 깬 바다거북이 갈매기들의 공격을 견디고 무사히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바다에 이르러 성인거북으로 성장하는 확률이 1/500이라던데 공부 안한 중학생이 고등학교에서 중상위권에 들어 갈 확률도 이 정도나 될까요?

그렇게 "난 이제 공부만 할거야. 놀 만큼 놀았어" 그러면서 투지를 불태웠던 아이들이 결국 포기하게 되는 원인은 뭘까요? 제가 느끼기에;

1) "열심히"의 기준이 다릅니다.

그들의 각오는 거짓이 아니고  실제로도 지난 날들과 다른 자세로 공부도 합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더 공부했다고 해서 성적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성적은 남들보다 더 많이 해야 오르는 것이지요. 어느 통계에서 보니 대한민국 고교생 상위권의 하루 자기공부시간이(강의 듣는 시간은 제외) 3.7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공부 안해서 기초가 부실한 학생들이 이런 상위권을 따라 잡으려면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해야 하는 데, 오히려 그들은 하루 2시간 정도 공부하면 굉장히 열심히 한 줄 알고, 그들 부모도 예전보다 아이가 훨씬(?) 열심히 하니 뭔가 성적의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나 첫 중간고사 치르고 나면 그 성적이 그 성적인 것에 공부동력이 확! 꺽여버립니다.

2) 공부 효율이 낮습니다.

학습에도 가속도의 원리가 존재합니다. 공부하다 보면 나름 요령도 생기게 되고 1시간에 50개 단어 외웠다가  시간이 지나면 60개 외우게 되고 70개, 80개...  가속도 붙듯이 급격히 학습량이 늘어나게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늦게 시작하는 학생들은 그런 요령, 습관들이 안 잡혀 있으니, 어릴 때부터 공부해 왔던 아이들과 비교해서 같은 1시간을 공부해도 공부효율이 확 떨어지는 거지요.

3) 포기하지 않는 것이 꼭 있습니다.

공부를 하겠다고 했으면 1번도 공부 2번도 공부 3번도.. 4번도... 마지막까지 공부여야합니다. 그래야 저 어릴 때부터 공부해온 친구들과 경쟁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1번 공부 2번공부로 우선순위를 공부에다 두기는 하되  공부 열심히  했으니 스트레스해소한다면서 작은 시간이나마 꼭 해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롤게임 딱 한판, face book, instagram 등 SNS, 그리고 여학생들은 얼굴화장(공부하겠다는 아이가 얼굴화장을 고집한다면 그 아인 99.99% 실패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4) 학교에서 굳이 배려해 주지 않습니다.

중학교 교육까지는 의무교육이지만 고등학교는 선택사항입니다. 특성화고 말고 일반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정했다는 것은 그 학교 거쳐서 대학으로 진학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것이고, 고등학교는 가능한 좋은 대학으로 자신의 학생들이 입학해서 자신들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입학 가능성이 높은 상위권 학생들을 위주로 학교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듯이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아예 교내 대회개최를 알리지도 않는다던지, 학생부 관리도 특정학생들에게 집중한다던지.....

최근 제 주위에 두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정말 바닥권의 중학성적이고 이미 수포자였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서  중3 겨울부터 열공하여 남들 다 포기해도  수I, 수II를 이해안되면 암기로 버티면서 고2 문과로 올라갔는데, 결국 그 둘은 진학을 포기해버렸습니다. 고2 되니 그 학교에서 미적분1의 수업을 교과서가 아닌 고3 수능생들이 풀어보는 ebs수능특강으로 그것도 step2,3만 골라서 진행하더랍니다. 그러니 자신들은 도대체 수학시간이 외계어 수업인지 한 마디를 이해하지 못하겠고 반에서 그 수업을 이해하고 따라가기라도 하는 학생들도 5-6명 정도?  그렇게 수학을 포기하고 나니 가고 싶은 학과에는 진학이 안되고... 어렵게 꾼 꿈도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요즘 학교앞 코인노래방이 그들의 주무대가 되었습니다.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 잡는 것, 그 것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누적량이 다르거든요. 다시 생각납니다.  바다거북의 생존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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