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곳에는 한국 가족들이 참 많습니다. 대부분 애들 영어교육 때문에 오신 거죠. 그러다보니 한국 아이들끼리 어울리는 것도 싫어하고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한국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도 말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게 맞을 지도 모르겠어요. 최근에는 외국인 아이와 노는 날을 정해서 자기 아이와 외국인 아이, 둘을 자기 집이나 상대편 집으로 데리고 가죠. 서너명이 같이 어울려 놀다가도 말이죠. 그럼 같이 놀던 아이들은 문밖에 우두커니 앉아 두 명의 아이들이 들어간 집 거실창을 바라보고 있기도 합니다. 멍한 눈으로... 어떤 날엔 자기도 들어가서 같이 놀고 싶을테죠. 저도 우리 애들이 외국애들과 어울려 놀 기회가 많아서 자연스레 영어를 익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온지 9개월쯤 되었으니 한국 애들끼리라도 영어를 사용하면서 놀면 좋겠다 싶죠... 마음 한편에서는 그 집이 부럽기도 하구요. 생각만 하는 걸 그 집은 과감히 행동에 옮기니까요. 자기 아이가 하고 있는 과외활동, 교외활동에 한국애들이 와서 자기 애들이 영어로 말할 기회가 줄까봐 대놓고 누구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걱정하시구요. 맘껏 놀아야 스트레스를 풀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남의 집 대문 앞 야드에서 고함을 지르며 하키를 하는 것도 허용하시구요. 정말, 공부가 뭔지, 이놈의 영어가 뭐라고 남한테 피해까지 주면서 잘 하게 되어야 하는 건지...
하긴 외국에 온 목적이 영어공부라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계획을 면밀히 세워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해야겠죠. 그렇게 못하고 있는 나 자신 때문에, 그 집 아이들보다 영어가 늘지 않아 보이는 우리 애들 때문에 시샘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9개월쯤 밴쿠버에 살면서 생각했던 것처럼 애들의 스피킹이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나이가 어린 한국애들과 어울려 놀 줄 알게 되었다거나, 외국 애들과도 짧은 영어지만 가끔 사용하면서 인사도 하고 배려하면서 놀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 보람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는데요. 가끔 씁쓸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