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만 지켜도 공부력은 나온다.

얼마전 초, 중학생들의 필통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우개를 비롯하여 연필, 샤프, 샤프심 등 제대로 넣고 다니는 아이들이 없더군요. 연필이 있지만 깎이지 않은 것들,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색색깔의 필기도구, 조각난 지우개, 썩은 우유팩 조각을 구겨 넣은 쓰레기 더미가 많았습니다. 생각보다 정말 제대로 구색을 갖춘 필통 찾아 보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사춘기 이후는 더더욱...

그게 뭐 중요해? 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밤을 먹고 오는지도 물었습니다. 이도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꾸준히 아침밥을 먹고 온 친구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오지 않는 친구들은 오히려 아침 먹고 오는 친구들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잠자는 시간도 물었습니다. 열두시 이전에 자는 친구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스마트폰의 소지 여부에 따라 잠자는 시간이 결정 됩니다.

친구 만나 나돌아다니고 이래저래 신경 쓸 일 만드느니 그냥 책보고 공부하며 자기를 위한 시간에 투자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공부만 잘한다면 친구 없는 것 쯤 무슨 큰 문제가 될까요? 너무 놀아 걱정인데 말입니다. 공부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으니 친구도 우습게 여깁니다.

하나 하나 살펴 보면 그리 어려운 일들이 아닙니다. 아침에 밥 먹고 필통 제대로 챙기고 친구들과 즐겁게 놀이 하는 일. 이런 것들이 별 대수일까 싶습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확대경을 사용하여 본다면 어떨까요?

필기도구가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무슨 공부든 처음에 제대로 할 의욕이 나지 않습니다. 빌리고 빌려주는 가운데 싸움이 나기 쉽고, 연필하나, 빨간 볼펜 하나 찾는데 십여분 이상이 소요 됩니다. 그러다 장난도 치고, 잘라진 지우개도 던지고 놉니다. 초반부터 아이들에게 산만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수년간 제공하게 됩니다.

먹으라고 잔소리를 해도, 잠을 더 자겠다느니, 속이 좋지 않다느니...애가 거부한 것이지 부모는 할만큼 했다고 말합니다. 매번 일교시가 끝나고 나면 편의점이나 매점으로 달려가 허겁지겁 다른 간식(인스턴트)으로 때웁니다. 아침이 이럴진 대, 저녁은 또 어떨까요? 아침을 굶고 다닌 아이들의 대부분, 저녁 식사도 인스턴트와 편의점 음식이 주가 됩니다. 학습 태도와 아침 식사간의 긴밀한 관계는 수도 없는 연구 결과로 나오고 있으니 두 번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습니다.

잠을 자지 않는 시간은 또 어떤지요? 수면은 다음날 오전의 집중력과 활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은행 업무가 일찍 끝난다고 일이 다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 나머지 시간은 오후에 있었던 일과를 정리, 분류하는 시간이 됩니다. 뇌가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입니다. 낮동안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넣었던 뒤죽박죽의 뇌를 서랍속에 차곡 차곡 넣어 정리하는 일을 해 줍니다. 이 시간이 부족하면 매번 정보만 얻으러 다니느라 애를 쓰고 다 날리는 꼴이 됩니다. 밤잠을 줄여 공부하는 친구들은 그만큼의 공부를 더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날 오전 집중해야 할 시간을 밤에 가져와 써 버리는 꼴이 되지요. 이 부분에서 남들이 다 하든 말든 무리한 학원 스케줄은 반드시 조정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게 될까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피할 수도 없지요. 스트레스원을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친구들과의 ‘놀이’는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공부가 아무리 힘들어도 자퇴하지 않고 학교를 잘 버텨 나가는 힘은 친구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즐겁다면 그 또한 함께하는 놀이와 휴식 시간 때문입니다.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힘은 부모도 또래를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부모가 하고 있는 공감은 ‘공감해주는 척’ 일뿐 진짜 공감은 불가능하지요. 마음이 아프다고 공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 대신 감정의 구멍을 메꿔줄 친구들의 역할도 인정 해 줘야 합니다. 압도적인 부모가 모든 것을 다 알아 해결 해 줄 것 같아도, 생각보다 그 결과는 그리 압도적이 될 수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주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작고 세밀하지만, 매일 조금씩 살펴 봐 주면 뜀틀의 받침대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기본을 무시하고 어떻게 더 큰 것을 취할 수 있으며, 다른 생동감 있는 목표를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양은 넘치고 넘쳐 납니다. 공부 교재가 없어서, 가르치는 교사가 없어서, 호롱불에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호롱불의 공부는 결핍과 간절함이라도 있었습니다. 뒤뜰에 물한잔 떠 놓고 빌어 대는 어머니의 안타까움이라도 간접적으로 전달 되었습니다. 최상의 로드맵이 없어서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닙니다. 서울대를 갈 수 있는 로드맵, 지방대를 가는 로드맵이 따로 있을까요? 부모가 이를 몰라서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5분만 가만히 앉아 생각 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좀 더 좋은 교재, 좀 더 잘 가르치는 교사를 찾아 헤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부 요인입니다. 있는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지만, 제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도 이미 아이 마음 속엔 없습니다. 수많은 공부 상처가 새겨져 있고, 혼자 단추를 열고 닫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성취감과 뿌듯함 등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실수를 할 때마다 지지와 격려로 대안을 배웠던 경험들이 경쟁에 휘말려 속도전으로 갔던 순간, 아이의 공부력도 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특목이 아이를 잘 가르치고 좋은 학원의 프로그램이 아이를 꼴등에서 일등으로 올려 놓은 것일까요? 아니면 좋은 아이들이 레벨 테스트로 걸러져 좋은 학습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일까요? 선발 효과의 정예 부대와 동네 예비군을 모아 놓고 무기 탓을 하면 안됩니다. 아이는 운동할 생각도 없으니 일단 삼각김밥이라도 매일 먹이고 쪄오르는 살을 차단하기 위해 한약을 지어 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시지프스의 신화같은 바위 굴리기를 부모는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부모만 애 닳아 정보전의 시장만 커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인식은 무엇일까요?

큰 것을 요구하고, 큰 사람이 되라고 하기 전에 가정 안에서 아이력을 키우기 위한 기본 전제 조건들은 잘 지키고 있는지 살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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